"권역응급센터 선정에 총 29곳이 지원,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대형 대학병원이 몰려있는 서울 동남권은 미달이었다."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가 권역응급센터를 20곳에서 40여곳으로 대폭 늘린 것은 지역별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위 빅5병원로 불리는 중증도가 높은 의료기관은 외면하고 있다. 왜일까?
삼성·아산은 애초에 미신청
실제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애초에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앞서 권역응급센터였던 서울성모병원은 최근 지정 기준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자진반납했다.
지난 2009년 새병원을 오픈한 지 10년도 채 안된 상황에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공사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세브란스병원은 앞서 권역응급센터를 운영 중인 서울대병원과 동일한 권역으로 묶이면서 신청 기준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지원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참여했을지는 의문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서울대병원 외 빅5병원은 권역응급센터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수가 가산 대신 규제 및 간섭, 안 하고 만다"
각 병원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지원은 없고 규제만 많은데 뭐하러 꼭 해야 하는가"라는 게 공통된 정서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한 교수는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이유로 타 대형병원은 꺼리는 것을 하는 것인데 지원은 없고 평가만 있으니 누가 하고 싶겠느냐"고 토로했다.
이는 응급의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다.
응급의학회 유인술 전 이사장은 "정부는 권역응급센터 지정해놓고 일부 수가를 가산해준다는 이유로 온갖 간섭과 규제를 쏟아낸다. 차라리 정부 지원 안받고 내부적으로 알아서 운영하겠다는 게 그들의 입장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지방대학병원은 권역센터에 따른 가산금이라도 받을 생각에 신청하지만, 환자가 넘치는 빅5병원은 지원금 포기하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병동 차고 넘치는데 굳이…"
그들이 권역응급센터 도전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빅5병원 응급실의 과밀화 현상은 이미 알려진 바. 그렇지 않아도 환자 쏠림이 심각한 데 권역응급센터까지 지정되면 대책이 없다는 계산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빅5병원 응급의학과 한 교수는 "솔직히 응급실에 환자가 줄 서 있는 상황이라 크게 의미가 없다"면서 "병상가동률도 99%에 육박하는데 여기서 응급실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지금까지 빅5병원 응급실 복도에는 암환자가 입원 대기를 위해 짧게는 1일, 길게는 2~3일까지도 머물고 있는 상황.
최근 복지부가 강도높은 응급실 과밀화 대책을 제시했지만 대형병원에 대기 중인 암환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아직 없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빅5병원들은 권역응급센터 지정이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빅5병원 중 유일한 권역응급센터인 서울대병원의 경우 지난 2014년도 권역응급센터 평가에서 18개 의료기관 중 17위를 차지했다. 최하점을 받은 이유는 과밀화였다.
지방의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빅4병원도 서울대병원의 평가 결과를 지켜보며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각에선 응급의료는 공공의료의 대표적인 분야인데 한국을 대표한다는 대형병원인 빅5병원이 역할을 해야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응급의학회 한 관계자는 "교수들은 필요하다고 느껴도 병원 차원에서 권역응급센터 운영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니 어쩌겠느냐"며 "응급중증도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빅5병원이 빠져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