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너무 끈끈해서 힘겨웠던 회식 자리에서 진료 부장님이 흐뭇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그 장소에 특별한 추억이 있으면 갈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내게는 보령이 그랬다. 보령 근처만 지나가도 인턴을 보냈던 2개월의 기억들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허름했던 병원 외관도 어느덧 정이 들어 오히려 그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웬만한 의료용품을 일회용으로 썼던 서울 본원과는 달리 이곳은 소독하고 재활용 가능한 물품들이 많았다. 유리 주사기나 스테인리스 소독 용품 등 이곳에서 처음 보는 것도 많았다.
보령 변두리에 위치한 병원의 느긋함은 입원한 할아버지들이 오후에 커다란 나무 아래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 속에서 볼 수 있었다.
인턴 사이에서 명물로 꼽히는 토끼 사육장에는 소아과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토끼에게 풀을 뜯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덜덜덜 소리가 나던 드레싱 카트를 끌고 다녔던 기억도 있다. 할머니들이 여럿 있는 다인실에는 소독할 때마다 심심한 할머니들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옛말을 하기도, 약을 좀 더 바르라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렇게 드레싱이 끝나면 가운 주머니는 언제나 인삼 사탕, 쥬스, 과자, 바나나 등 챙겨주신 먹거리로 불룩했다. 한번은 소독하고 있는데 옆에서 딸기를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서울과 달리 느긋하고 정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 환자들은 의사 말을 잘 따르지도 않았는데 몇몇 할아버지는 스스로 붕대를 끌렀다 매기도 했다. 침상 안정하라는 지시에도 휠체어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고 "갑갑해서 가만히 못 있어"라 말하시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할머니 환자에게 "이 정도는 약 드실 필요 없어요"라고 했더니 "약도 안 챙겨준다고 젊은 양반이 야박하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의사 인력이 귀해 서울에서 하던 잡무가 아닌 진짜 환자를 보는 일이 맡겨졌다.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견은 늘 존중 받았고 그 존중이 의사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한편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어두운 면도 존재했다. 정상이라고 보기 힘든 사고방식이나 행동 때문이었을까.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시야를 몇 배 넓혀야 했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평생 산 사람들은 선생님처럼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서 힘들더라도 맞출 수 있어야 해요." 베테랑 수간호사님은 말했다.
종합병원도 교수님마다 의료를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 일차 진료 현장에 있다 보니 그러한 차이점은 극명하게 느껴졌다. 검사를 좋아하고 약 쓰는 것을 선호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약을 많이 쓰는 것보다 환자 스스로 이겨내는 방식을 선호하는 의사가 있다.
최근 의료 소송이 늘어나면서 의사들 사이에는 '방어 진료'가 당연시 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100퍼센트 정확한 진단은 어떠한 질병과 상황에도 있을 수 없다고 배웠다. 진행해야 할 검사와 진행하지 말아야 할 검사를 구분하여 진단하고 적절한 투약과 처지를 하는 것, 이것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의사의 임상 경험이고 오랜 기간 수련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간혹 놓칠 수 있는 질환들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검사와 그 검사에 의존하는 것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의사로서 임상 경험을 갖추기까지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지만 임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우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의사답지 않게 느껴진다.
6월, 여름의 보령 병원은 지옥이라고 했다. 해수욕장 개장과 머드축제가 시작되어 응급실 근무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대도시처럼 불행한 사고로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봐야 하는 씁쓸한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인지 보령을 떠난다는 섭섭함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후에 보령을 지나칠 때면 찾게 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