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이 있고 수술장이 있다. '수술실'은 말 그대로 수술을 하는 방으로 환자의 수술이 이뤄지는 곳이다. '수술장'은 수술실이 여럿 모여 있는 공간을 뜻한다. 의학 드라마나 의학 다큐멘터리를 눈 여겨 보았다면 수술장을 표현할 때 '로젯'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젯은 프랑스에서 훈장 메달을 수여할 때 메달에 같이 부속되는 원형의 꽃모양 장식을 의미한다. 가운데 심지가 있고 주변으로 꽃잎들이 원형으로 둘러싼 장미꽃과 같은 형태를 '로젯'이라 하는 것이다.
"오늘 응급실에서 올라온 외과 응급 수술은 D로젯에서 방을 열 예정입니다."
"선생님. K로젯에 방이 비어 그쪽에서 오후 밀리는 스케쥴 잡았습니다."
"정형외과 선생님 G로젯으로 오세요."
종합병원은 수술실이 수십 개에 이른다. 수십 개의 수술실을 복도를 두고 일렬로 배치할 수는 없다. 수술실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양압 환기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일렬 배치 시 수술 기구를 포함한 시설물의 오염 가능성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이나 환자의 동선도 비효율적이다. 수술장을 하나의 큰 집에 비유한다면 가운데 거실을 두고 그 거실을 주변으로 수술실들이 방처럼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이룬다. 수술실 6~8개와 거실 역할을 하는 중앙의 수술 준비실이 '로젯'이라는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이다.
거실 역할을 하는 중앙 수술 준비실에서는 각 방의 수술 진행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로젯 내 소독실에서 수술실로의 이동 경로이자 의약품, 수술 기구들을 대기 및 적재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중요하게는 그 로젯을 책임지는 마취과의 영역이기도 하여 주로 주임 교수님들이 상주하고 있다.
각 수술실마다 마취과 전공의와 인턴을 배정하고 수술 진행 상황 및 마취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로젯은 하나의 독립된 수술장으로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종합병원은 대개 각각의 로젯마다 수술 분과가 나뉘어져 있다. 각 분과마다 쓰이는 수술 기구 및 준비해야 하는 물품도 차이가 있다. 때문에 로젯마다 각 수술 분과에 맡게 특화되어 있는 경우 수술 준비를 비롯하여 응급 시 필요한 물품까지 준비해놓을 수 있어 효율적이다.
본원은 일반외과의 경우 E로젯, 정형외과의 경우 G로젯, 이비인후과 및 성형외과는 H로젯, 산부인과는 K로젯 등으로 로젯이 분과마다 할당되어 있다. 그리고 마취과 주임 교수님들이 각각의 로젯에 마취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있어 거대한 수술장이 운영된다.
가동되는 수술실은 외래를 제외하고 방이 60여 개가 넘는다. B로젯부터 K로젯까지 총 10개의 로젯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종합병원에 비해 몇 배는 규모가 큰 만큼 빠듯한 인원으로 움직인다. 독립된 로젯들이 한 송이 한 송이 모여 거대한 수술장을 이루는 것이다.
정규시간 이후 응급 수술이 열리는 날에는 로젯들이 다시 모였다가 흩어지고 수술이 배정되어 진행된다. 어쩌면 로젯을 한데 엮어 조율하는 일은 장미꽃이 무성한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 정원사의 역할 같은 게 아닐까?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