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비 관리 업무 위탁 수행 기관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선정되자 의료계는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실손 의료보험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비급여를 정부가 통제하려는 의도 자체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결국에는 실손 의료보험사 배불리기 위한 정책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3일 일선 의료기관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 관리 업무를 심평원이 맡게 됨으로써 정부의 비급여 통제가 본격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공개에 관한 기준 제정안을 21일까지 행정 예고한다. 여기에는 비급여 진료비 관리 업무를 심평원에 위탁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건보공단, 대한의사협회도 비급여 관리 업무 위탁에 관심을 보였지만 복지부는 결국 심평원을 선택한 것이다.
대신 심평원은 비급여 진료비 등 현황조사 및 공개에 관한 과정에서 건보공단, 전문학회, 의약계 단체, 소비자단체, 학계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
서울 한 개원의는 "비급여를 국가가 관리하는 순간 비급여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심평원은 의료기관에서 행한 진료 및 시술을 심사해 적정한지 평가하는 곳인데 공공의료와 전혀 상관없는 비급여도 통제를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한 개원의도 "저수가라는 현실을 정부도 인정할 만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실 비급여 조사를 누가 하든 상관없는데 급여화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비급여를 할 수밖에 없는 저수가 현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납득할 수 있는 보상체계를 가면 의사들도 굳이 비급여 조사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비급여를 통제하면 실손의료보험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라북도 한 산부인과 원장은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심사를 심평원이 하고, 치료비를 보험사가 지급하게 해서 방어진료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비급여도 심평원이 오케이 하면 보험사가 치료비를 지급하는 형태로 바뀐다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서울 또 다른 산부인과 원장도 "건강 보험은 국민과 건강보험공단의 계약이고, 의료기관은 제 3자"라며 "비급여는 국민과 공단 사이, 즉 건강보험법상의 계약 영역이 아니고 국민과 의료기관 사이의 계약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건강보험법상 심평원 업무에도 비급여 관리는 없다"며 "정부는 건강보험계약과 건강보험비의 지급에 관여하면 되지 사적 계약 영역에 관여하면 안 된다. 그럴 거면 심평원에서 건강이라는 단어를 빼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법이 마련된 상황에서 어차피 비급여를 관리한다면 심평원이 그래도 건보공단보다 낫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기도 한 병원장은 "비급여를 관리하려면 행위정의부터 이뤄져야 하는데 심평원이 의료 행위 정의 등 학문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는 업무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보공단은 행정적인 부분을 관리 담당하는 일을 주로 하는 만큼 의료인 인력풀이 많은 심평원이 비급여를 관리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