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가 연착륙하려면 말기환자의 의료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혈액종양내과)는 31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의 정착과 확산을 위한 선도적 대응전략' 심포지엄에서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날 허 교수는 장례문화가 과거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했듯이 임종문화도 현재 기술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치료' 중심에서 '케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국적인 의료서비스가 아닌 지역 중심 의료서비스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한국 의료제도는 가격을 통제하면서도 선택권은 환자에게 있는 구조 때문인지 말기환자가 대형병원으로 쏟아지고 있다"면서 "이는 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의료전달체계 차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늘리고 완화의료팀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허 교수는 미국와 한국의 사망전 항암제 즉, 항암화학요법을 받는 비율을 예로 들며 환자의 존엄성을 물론 의료비 차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사망전 6개월 항암제 투여율이 35%에서 사망전 1개월은 10%까지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사망전 6개월 항암제 투여율은 48.7%로 높았고, 사망전 1개월 또한 30.9%로 크게 감소하지도 않았다. 허 교수는 이를 '의료집착'이라고 했다.
이날 '한국의 보편적 완화의료 모델 개발' 발표를 맡은 서울대병원 김미소 교수(혈액종양내과) 또한 조기 완화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기환자의 상급종합병원 높은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 대해 적극적인 치료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가 사망 전 1주 이내에 이뤄지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연구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조기 완화의료를 받은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과 비교하면 생존기간이 연장됐으며 임종단계에서 연명치료를 더 적게 받았다"고 거듭 조기 완화의료 활성화를 강조했다.
패널토의에 참석한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말기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렸다는 것은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라고 했다.
환자 상당수가 '호스피스'라고 하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활성화하려면 '호스피스·연명치료'는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생존을 늘릴 수 있는 서비스로 인식하도록 알릴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질병정책과 강민규 과장은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 대상을 말기암환자에서 비암질환(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등)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그는 "올해 말까지 비암성 말기질환의 임상적 기준을 연구, 내년 1사분기까지 호스피스 서비스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내년 하반기 시범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내년 8월, 호스피스-연명의료법 시행 및 2018년 연명의료제도 시행에 앞서 오는 9월부터 요양병원 호스피스 시범사업에 돌입한다.
이어 내년 1사분기에는 자문형 호스피스 시범사업, 하반기에는 비암성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호스피스 제공기관을 의원, 한의원, 병원·한방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으로 확대하고 제공 유형도 입원형·자문형·가정형 등으로 다각화할 계획이다.
강민규 과장은 "원주, 안동 지역은 호스피스 제공기관이 전무할 정도로 지역 불균형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소아 호스피스 데 대한 수요도 증가하는 반면 전용병상 및 인력은 고사하고 실태조사 조차 제대로 없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