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은 금융감독원이 움직였다. 하지정맥류 레이저 수술의 실손보험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표준약관을 다시 개정하고 있는 것.
대한의사협회는 하지정맥류 레이저 수술의 실손보험 보장 제외 사실을 인지한 즉시 금감원에 표준약관 개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정맥류를 주로 실시한 대한흉부혈관외과의사회는 금감원을 직접 항의 방문하며 표준약관의 부당함을 알렸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손의료보험 규제 문제를 전 의료계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결국 의협과 흉부외과의사회, 대한개원의협의회가 힘을 합쳐 이끌어낸 변화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목소리가 정부에 통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27일 하지정맥류 치료시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닌 수술을 했을 때도 치료 목적이라고 판단해 실손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사실 의협과 의사회가 하지정맥류 실손보험 보장 제외 내용을 인지한 것은 늦었다. 표준약관이 개정, 적용된 1월 이후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정맥류 수술 방법 중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인 절개술만 보상 대상으로 하고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인 혈관레이저 폐쇄술 등은 미용 개선 목적으로 간주해 보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게 표준약관의 주 내용이었다.
발로 뛴 흉부외과의사회, 금감원-국회 직접 찾았다
흉부외과의사회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4회에 걸쳐 금감원을 직접 방문했다.
김승진 회장은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와 1차적으로 방문했다. 의사회 임원과 2주 만에 다시 하지정맥류 수술 기준 등의 자료를 들고 금감원을 찾았다.
흉부외과의 주장은 일관됐다. 하지정맥류 수술 기준은 명백하고,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인정 안된다고 실손보험 보장도 안 해주는 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표준약관 재개정에 대한 금감원의 입장은 완고했지만 흉부외과의사회의 움직임이 의료계 전반으로 퍼졌다. 급기야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실손보험 표준약관 변경에 관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본격 대응에 나섰다.
7월까지 김승진 회장은 비대위 위원들과, 흉부외과의사회 임원과 두 번 더 금감원의 문을 두드렸다.
김 회장은 국회도 찾았다. 그는 실손보험 표준약관의 문제점을 알렸고, 이에 공감한 국회 정무위원회 한 의원은 금감원 실무자의 보고를 직접 받으며 상황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김 회장은 "금감원 역사상 의협 등 전문가 단체 때문에 약관을 바꾸게 된 것은 처음이라는 말까지 금감원 직원에게 들었다"며 "의사회가 열심히 했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확한 하지정맥류 수술 기준이 있다"며 "현재 약관은 개선이 불가피할 정도로 나쁜 약관"이라고 덧붙였다.
표준약관 개선 공문에 보도자료…문서로 말한 의협
흉부외과의사회가 행동에 나선 사이 의협은 금감원에 공식 문서를 보내며 표준약관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2월, 의협은 금융감독원에 1차 공문을 보냈다. 3월에는 실손보험 표준약관 개정이 필요하다는 보도자료도 배포하며 다시 한 번 표준약관 재개정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의협은 공문을 통해 "건강보험에서 혈관레이저 폐쇄술 등을 비급여로 분류한 것은 미용 개선 목적의 시술이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 등으로 급여 인정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실손보험 대상 제외는 의학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며 의학적 기준에 따라 표준약관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금감원이 의료계의 지속적인 목소리에 응답한 것은 8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지 약 6개월 만이다.
금감원은 의협에 공문을 보내 치료 목적의 하지정맥류 수술의 구체적 기준을 물었다. 의협은 흉부외과의사회, 대한외과의사회에 의견을 받아 답했다.
그리고 금융위원회에다가 앞으로 구성할 예정인 (가칭)상품심의위원회에 의료계 전문가 단체 포함을 요구했다.
실손의료보험은 단지 금융보험 상품이 아닌 국민 건강권과 의료 이용에 대한 선택권이 직결돼 있는 만큼 관련 제도 변경 및 개선에 대한 의학적 전문가 의견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의협 서인석 보험이사는 "하지정맥류 레이저 수술을 실손보험 보장 항목에서 제외할 때 전문가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전문가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회는 산하 의사회나 학회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의견을 서로 주고받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상생하는 관계"라며 "이번 표준약관 개선도 흉부외과의사회와 대개협, 의협이 한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말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예의주시해야"
의료계의 지속적 문제 제기가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 개선을 이끌어 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입법예고 기간이기 때문이다. 약관 개정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보험사들의 이의신청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김승진 회장은 "다음달 6일까지 이의신청을 받는 예고 기간이다"며 "이의 제기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만약 보험사 등에서 이의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내용을 파악해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인석 이사도 "의견 조회 기간이지만 금감원에서 하지정맥류에 대한 모든 수술을 치료 목적으로 인정했다"며 "실손보험 표준약관을 의학적 기준에 맞게 재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