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임신중절 수술은 비도덕적 진료다.'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면 합리적 논거를 내라는 보건복지부에 대한의사협회는 어떻게 답했을까. 의협은 법적 규제만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비도덕적 의료행위 항목에서 임신중절수술 부분은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최근 면허제도 개선 관련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개정령안에 대한 의견을 확정 짓고, 복지부에 제출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8개의 비도덕적 진료행위 항목과 이를 위반했을 때 자격정지 12개월이라는 조항.
의협은 우선 비도덕적 진료행위라는 말 자체가 8개 유형 전체를 커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말인 '의료인 윤리에 반하는 진료행위'라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자격정지 12개월로 상한만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자격정지 6개월 이하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비도덕적 진료행위 8개 항목별로 각각 행정처분 기준의 상한을 따로 적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의학적 타당성 등 구체적 사유 없이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등을 사용하는 경우는 행정처분 기준을 '2개월 이하'로 명시하는 식이다.
의협은 비도덕적 진료행위 8개 항목 각각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 중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항목에 대해서는 '삭제'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의협은 "낙태죄는 형법에서 의료인과 임신중절 여성에게만 책임을 떠맡기고 있고, 모자보건법에서는 낙태를 하는 여성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권리 없이 책임만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낙태는 근친상간, 강간, 유전성 질환 등 극히 일부 사유로만 할 수 있다"며 "이마저도 임신 24주 이내에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현실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복지부의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도 근거로 제시했다.
의협은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건의 낙태가 이뤄지고, 낙태 중 90% 이상이 사회 경제적 이유로 발생하고 있다"며 "법적 규제만 강제해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대안 없이 개정안을 강행하면 과거 한 의사단체가 낙태 시술병원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던 사회 혼란이 재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강조했다.
또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외의 약물 등으로 인해 진료행위에 영향을 받은 경우에 대해서도 항목을 삭제하거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당 항목에 '중대한'이라는 단어를 삽입해야 한다는 게 의협의 안. 여기에 '응급을 요하는 수술 등 긴급 의료행위가 필요한 경우는 제외'라는 말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나머지 6개 항목에 대해서는 의미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했다.
'진료 중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1항 각호에 열거된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부분에 대해 의협은 "구성 요건만으로 처분하는 것은 명확성 원칙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로 바꾸고, 법원의 최종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윤리위원회는 사전 자격정지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넣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령수술을 규정한 항목에 대해서도 "대상을 의사에 한정할 필요 없이 한의사와 치과의사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어느 선까지가 대리수술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비도덕적 진료행위 8개 항목의 마지막인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서도 모호성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의협의 안은 '그 밖에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의료인 윤리에 반하는 진료행위를 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