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응급의료시스템, 문제는 따로 있다
오는 2일 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학회, 외상학회, 시민단체가 전주 소아사망사건 사례조사위원회가 첫 논의를 시작한다. 각 분야 전문가가 재발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 <메디칼타임즈>는 과연 응급의료시스템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전주 소아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 째. 응급의료 현장에선 권역응급·외상센터 운영의 허점과 한계가 속속 제기되고 있다.
1일 전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허탁 소장은 "외래진료 중심으로 돌아가는 의료현실에선 한계가 있다"면서 "초기 권역외상센터를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권역센터는 실패할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권역외상센터 지정 취소 이후 병원 내부에서 '이제는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결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고 털어놨다.
즉, 권역외상센터 지정과 동시에 병원이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했어야 정부가 정한 지침을 따를 수 있었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했고 최근까지도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허 소장의 고백이 전남대병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 정부가 정한 권역센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확답할 수 있는 센터가 몇 곳이나 되겠느냐는 게 응급의료계 내부에 자조섞인 질문이다.
"권역센터 지정은 됐지만 시스템은 그대로?"
응급의학회 한 관계자는 "전북대병원이 앞서 권역외상센터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병원 내부에 쉽게 바꿀 수 없는 조직 간에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권역외상센터 지정 조건으로 각 진료과장이 적극 참여하겠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전북대병원의 경우 진료과장의 동의를 받지 못해 신청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권역센터는 각 진료과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인데 각 진료과의 동의조차 구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면 권역응급센터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북대병원이 150억을 쏟아붓고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나섰지만 각 진료과 내부에서 변화하지 않고서는 돈을 아무리 투자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는 전망도 나왔다.
권역외상센터 연구용역을 맡은 바 있는 서울의대 김윤 교수도 "적어도 이번 사건은 인력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권역외상센터 사업계획서에는 외상팀을 4개이상 갖추고 그에 필요한 의료진 20~25명을 채용, 팀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담는다.
이는 야간에 중증외상환자가 몰렸을 때 당직팀 이외에도 온콜 당직팀을 별도로 가동해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최근 최도자 의원실에서 발표한 것에 따르면 목포한국병원 등 일부 병원은 외상전담전문의에게 외래진료 역할을 맡겼다"라면서 "낮에 진료를 하는 의사를 야간에 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권역응급 혹은 외상센터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했다면 권역 내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권역센터는 지역을 책임지는 의료기관으로 일반적인 외래진료를 위한 병원이 아니다"라면서 "권역센터 의료진은 수동적인 진료만 해서는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초 권역응급, 권역외상의 사업계획서에는 존재했던 시스템이 현실에선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던 셈이다.
"권역응급-권역외상-권역심뇌혈관 세분화 효과적일까"
권역응급센터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를 "시작부터 잘못된 모형"이라고 했다.
그는 권역응급센터로 문제가 해결안되면서 권역외상센터를 만들었고, 여기서 또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확대하는 것에서 대책을 찾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상 응급환자는 응급실로 들어오는데 센터만 세분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환자만 떠넘기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역응급센터는 심정지·심혈관질환·중증외상·뇌혈관질환 등 4대 중증응급환자 치료를 전담하지만,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나누고 쪼개면서 책임만 전가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허탁 소장은 "권역외상센터 갯수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면서 당초 6곳에서 17곳으로 늘어나면서 죽도 밥도 아닌 외상센터가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정된 예산에 갯수가 늘면서 지원액이 줄었고, 환자가 흩어지면서 대기 의사도 시설 및 장비도 급증했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전남대병원 중증외상환자 수는 연 평균 400여명. 중증응급수술 환자는 1주에 1~2건에 그친다. 이 환자를 위해 외상전담전문의가 (일반응급 및 외래진료 업무 없이)상시 대기해야하는데 의료 질을 유지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는 접근성을 이유로 권역별 센터를 지정했지만 오히려 인적 및 시설 규모를 갖춘 권역센터로 힘을 모으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봤다.
외상외과학회 한 관계자는 "전문의 질 유지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환자와 수술 건수가 있어야한다"면서 "한국 의료실정상 전담전문의를 고수해야 한다면 각 센터를 통합, 운영하는 것을 고려해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