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지정, 이젠 쳐다도 안본다. 어차피 빅5병원 등 대형병원만을 위한 기준으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말)
이 된 지 오래다."
지난 8일 복지부가 발표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을 두고 서울권 한 대학병원 관계자가 한 말이다.
제3기 상급종합병원 지정(2018년~2020년)을 앞두고 대학병원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소 대학병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서울권 A대학병원 관계자는 "서울권에서 상급종합병원에 지정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가 됐다. 제 아무리 쫒아가려고 해도 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보직자는 "씁쓸한 얘기다. 더 슬픈 것은 앞으로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중증도, 의료질 평가를 강화하는 지정기준은 결과적으로 대형병원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는 이어 "상급종합병원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모든 정책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문제"라면서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방안은 왜 없느냐"고 꼬집었다.
최근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 이외에도 의료정책 방향이 대형병원에 편향돼 있다는 게 병원계 일관된 지적이다.
제2기에서 턱걸이로 상급종합병원에 지정된 대학병원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B대학병원 주요 보직자는 "기준에 맞춰 달리다 보니 환자구성비율 등 병원들이 상향 평준화됐다"면서 "상대평가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는 있는데 숨이 차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실현 가능한 부분이라면 희망이라도 있지만 빅5병원 등 대형병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평가항목에서는 수시로 한계에 부딪친다.
실제로 지정기준을 살펴보면 5개 분류별(심장, 뇌, 암, 예방적 항생제가 필요한 수술, 진료량)로 평가에 따라 가점을 주는 의료 서비스 질 평가 항목만 보더라도 물리적으로 중증도 높은 환자가 몰리는 대형병원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심장, 뇌, 암 질환은 차치하더라도 진료량은 의사도 환자도 많은 대형병원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면서 "중증도를 크게 높인다고 중소 대학병원이 만점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평가에서 가중치가 가장 높은 환자구성비율은 꾸역꾸역 맞췄다. 하지만 환자 구성 비율, 의료 서비스 질 평가 등에서 대형병원의 장벽을 넘기는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D대학병원 주요 보직자는 "빅5병원은 병문안객 통제시설인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는데 문제없지만 우린 다르다. 중증도 환자구성 비율도 대형병원은 전문진료질병군 35%를 훌쩍 넘겼지만 지방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고착화 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