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누가 먼저 와서 왕관을 씌어 주지 않는다. 왕관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작은 일이 맡겨졌을 때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열심히 해야 한다."
임기 반환점을 돈 한국여자의사회 김봉옥 회장은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왕관을 기다리고만 있는 여성 인재를 먼저 적극 발굴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왕관 신드롬은 왕비처럼 가만히 있으면 보상과 승진이라는 왕관을 씌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5일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여자의사회 제61차 정기총회에서 만난 김 회장은 기다리기만 해서는 왕관을 쓸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며 인재 발굴 각오를 다졌다.
김 회장은 충남대병원장 임기 마무리와 함께 3월부터 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으면서 여자의사회를 최우선에 두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여성 리더가 모이는 행사는 점심시간이 많은데, 의사들은 진료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활동이 쉽지 않았다"며 "여성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계 행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여의사회 활동에 올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회장 취임과 함께 김봉옥 회장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인재 발굴과 양성평등.
김 회장은 "여성을 리더 자리에 먼저 올리는 것보다 리더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시키면 할 수 있고, 하니까 된다는 사례를 찾아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여의사회에서 해마다 시상하는 'JW중외제약 학술상' 수상자 모임. 올해까지 총 21명의 여성 연구자에게 상이 주어졌다.
김 회장은 "단순히 상만 받고 끝날 게 아니라 역사가 연결되고 돌아오게 해야 한다"며 "지금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에서 여의사 비율을 높이는 것도 김 회장의 앞으로 과제다.
그는 "법에서도 국회의원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가 있다"며 "이를 의협 대의원 선출에도 적용해야 한다. 전체 의사 중 여성의사 비율이 24% 정도 되는데 이 비율을 의협 대의원 250명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은 일을 안 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여성 의사를 찾고 발굴할 것"이라며 "지난달부터 대구, 경기도 등 지회를 가고 있다. 전국 곳곳에 능력 있는 여의사가 많다"고 기대했다.
"병원서 일하는 여의사가 나서서 양성평등 외쳐야"
김봉옥 회장은 남녀 의사의 '평등'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 여성 의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피해사례를 접수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려고 한다"며 "연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신의진 교수가 적극 도와주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이 밖에도 여의사회는 최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양성평등 및 폭력 예방 의식 확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오는 9월에는 대한병원협회 주최 국제병원의료산업박람회에서 '양성평등'을 주제로 세션도 진행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원장이기도 한 김봉옥 회장은 의대 평가 항목에 권고 사항으로 '성(gender)인지도' 분야를 추가할 계획이다.
그는 "남성도 여성도 성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한 현실"이라며 "여성 화장실이 학생 수에 비례하고 있는지, 여성 탈의실은 있는지 등 현실적인 데이터도 없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을 개발, 반영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등을 포함한 각종 폭력, 여성차별 등이 병원 안에서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의료 기관에서 근무하는 여의사가 잘못된 부분을 근절하기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