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병·의원
  • 대학병원

말뿐인 주80시간…교수 이름으로 당직서는 전공의들

박양명
발행날짜: 2017-04-19 05:01:00

전공의 당직표는 '가짜' 투성이…암묵적 초과근무 일상화

전공의 수련시간 주 80시간 제한은 허공의 메아리였다.

법까지 만들어 수련시간을 제한하고 있지만 현장은 여전히 당직표 조작이 만연하고 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A국립대병원 외과계열 3년차 전공의는 "업무량도 변하지 않고 인력이 더 투입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80시간 넘게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니 당연히 당직표를 가짜로 만들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특히 외과계열은 수술이 길어지는 등 불가피한 초과 근무도 있어 수련시간을 80시간에 딱 맞춰 기록할 수도 없다"며 "법에는 교육적 목적을 위해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는 구절도 있어 88시간에 맞춰 당직을 짜는 병원도 있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또 "일당도 5만원이라는 포괄임금으로 묶여 있어 초과 근무를 해도 별도 수당이 없다"며 "최저 임금도 못 받는 현실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서울 B대학병원 전공의 2년차 C씨는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43시간 이상 병원에 머물렀다. 담당 환자의 상태가 위급해져서 머무르기 시작했던 것이 2박 3일째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법에는 연속근무를 하더라도 36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 응급상황일 생겼을 때도 연속 40시간까지 수련할 수 있다. 즉, B병원은 법을 위반한 게 된다.

C씨는 "담당 환자가 아프니 어쩔 수 없다"면서도 "엄밀히 말하면 전공의는 수련을 받는 입장이다. 환자에 대한 1차적 책임은 교수에게 있는데 환자 케어를 전공의에게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직표에는 주 80시간 근무한다고 해놓고는 병원에서 살다시피하는 것"이라며 "레지던트는 병원에 거주하기(residency) 때문에 레지던트라는 농담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병원은 뿐만 아니라 전공의는 80시간까지 밖에 일을 할 수 없으니 초과 근무를 하는 전공의들은 전임의나 교수 등 전문의의 이름을 입력한다.

C씨는 "전산에 코딩을 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코드에 교수 이름을 넣고 당직은 전공의가 서는 방식"이라며 "차팅도 교수 아이디로 한다. 간호기록에도 당직의 이름에는 실제로는 자리에 없었던 교수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렇게 되면 이름이 올라 있는 교수에게 당직비도 나오게 되는데 실제 당직을 선 전공의에게 그 비용이 돌아올 일도 극히 드물다"며 "더 큰 문제는 의료소송 등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와 교수는 이미 만연해 있는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남 D종합병원 인턴은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 80시간을 넘어서면 전산 입력을 못하게 돼 있어 누가 봐도 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돼 있다"며 "당직표에는 남기지 않고 암묵적으로 근무를 더 하는 게 당연한 듯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 E종합병원 외과 전문의는 "근무시간표를 허위로 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며 "80시간을 맞추려면 대체 인력이 필요한데 전임의도 없고, 의사도 부족한 곳은 허위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실태 조사를 하더라도 예고를 하고 나오기 때문에 가짜 당직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은 법 유예기간…투자 아끼려는 병원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수련시간 등을 어긴 수련병원을 적발했을 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처벌이 본격 적용되는 것은 올해 12월 23일부터다.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처벌 조항이 본격 시행되지 않으니 병원들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A국립대병원 전공의는 "다른 병원도 이렇게 하니까 걸려도(?) 괜찮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전보다는 환경이 분명 좋아졌지만 병원들이 아직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B대학병원 전공의도 "병원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값싼 전공의를 유치하고 싶어 한다"며 "병원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인 병원계는 전공의 수련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대한전공의협의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

대전협 기동훈 회장은 "전공의법에는 국가가 전공의 육성 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있지만 법 제정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가는 예산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는 사법연수원을 운영하며 법조인 교육에 나서고 있다. 의료도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국가에서 해주는 게 없다"며 "병원들이 재정적 문제를 딛고 제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