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A국립대병원 응급실 현황판 한쪽에 쓰여 있는 '알림'이다. 전공의법 시행으로 업무 공백이 생겼는데 이를 메울 인력이 부족해 내린 특단의 조치다.
#. "위십이지장궤양 출혈까지는 연락을 받겠다. 긴급한 것 외에는 오전 7시 이후에 연락하면 된다. 그 사이 해결히 힘들면 차라리 전원해라."
B대학병원 외과 교수가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한 말이다. 야간 당직까지 서면서까지 병원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련시간 주 80시간 제한으로 대변되는 전공의법 시행 이후 한밤의 응급실에는 일할 의사가 없어졌다. 특히 전공의가 적거나 없는 작은 병원일수록 그 현상은 더 심하다.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씩 일하고 비운 자리를 메울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전문의들이 위급할 때만 환자를 보겠다고 선언하고는 밤이 되면 병원을 떠나는 것이다.
경북 C종합병원 외과 전문의는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연락을 안 받겠다고 하는 의사가 꽤 많다"며 "주니어한테 응급실 콜을 받아서 하라고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응급실에서 연락할 곳이 없는 것"이라며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관련 진료과에 노티(notification:환자의 상태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하는데 노티 자체를 안 받겠다니 응급의학과도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D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응급의학과가 진료과 당직 전공의에게 노티를 해도 해당 진료과 전공의가 연락할 전문의들이 없는 경우도 있다"며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전공의도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그 판단에서 고민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당직을 서는 전공의들의 업무가 과중해지면서 응급실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쏟게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
E국립대병원 내과 교수는 "보통 병동과 응급실 당직을 따로 두는데, 주80시간 제한이 생기다 보니 병동과 응급실 당직을 한 명이 전담하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응급실 콜을 받고도 병동 업무가 과중해져 곤란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이어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응급실보다는 병동 환자를 챙기게 된다"며 "낮에는 입원전담전문의라도 있지만 그들마저 없는 밤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 국립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가 15명이 있는데도 응급실 인력이 모자라 인턴이 환자 초진에 어레인지까지 하다 인턴 전원이 파업하는 사태까지 맞기도 했다.
전공의들도 응급실에서 응급진료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서울 F대학병원 전공의 2년차는 "전공의가 한 명도 없으면 교수들이 당직까지 서면서 진료를 못 본다고 한다"며 "대형병원은 우선 사람수가 되니까 어떻게 굴러가기라도 하지만 작은 병원일수록 밤 진료를 안 하려는 현상은 더 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결국 지방 환자는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와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서울 대형병원 의료진의 업무 스트레스는 증가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제반 환경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만 바뀌다 보니 부작용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경남 한 종합병원 전문의는 "병원 시스템이 바뀌려면 병원도 물론 노력해야 겠지만 의료제도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반만 변화를 하니 부작용들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형병원, 지방 대학병원, 지방 중소병원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며 "전공의법은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