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모든 민원의 정점이 바로 외래간호 파트에요.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직업을 갖고 여기에 있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들지만 그러니 내가 지켜야죠. 전 간호사잖아요."
삼성서울병원 안과 외래를 이끌고 있는 허수경 수석간호사가 가장 먼저 꺼내놓은 말이다. 1998년 간호사 면허를 받아든 후 벌써 20년의 세월동안 간호사로서 살아온 그.
그렇기에 이제는 조금 쉬어갈만 하지만 그는 외래간호가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아니면 버틸수가 없는 곳이기에 자신이 지켜내겠다는 각오다.
안과 의료진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하고 환자 상담을 진행하며 협진을 도모하고 신입 직원 교육까지 맡으며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그이지만 그에게도 꿈이 있다.
병원을 떠나가는 후배들을 지켜내기 위한 간호사 라이프 코치가 바로 그것. 후배들이 힘든 병원생활 속에서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간호사로서 꿈과 목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20여년의 간호사의 삶을 모두 쏟아부어도 부족하다는 외래 파트를 인터뷰를 통해 한번 들여다 보자.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하면 병동 간호사를 떠올리잖아요. 실제로 간호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 외에는 외래간호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외래 간호사는 어떠한 일을 하고 있나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 의사와 환자를 이어주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병동간호사는 병동별 주치의와 호흡을 맞춘다면 외래 간호사는 외래를 보는 의사들과 함께 하는 거죠. 한마디로 얘기해 병동간호사는 주치의를 통한 처방, 투약이 주고 외래간호사는 설명이 주에요. 병동은 주치의와 소통을 한다면 외래는 환자와 소통을 하는거죠. 안과 파트를 예를 들면 5개 파트가 있어요. 각막과 백내장, 시력교정술, 노안교정술, 각막이식이죠. 이 파트마다 외래간호사가 있다고 보면 되죠.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3분 진료가 주를 이루잖아요. 그 안에 충분한 설명이 힘들어요. 의사들이 진료실에 들어가면 외래 간호사가 사전 설명과 사후 설명을 담당하죠. 의사들이 빠르게 핵심만 진료할 수 있도록 그 전후에 구멍을 메워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될 듯 해요. 외래진료의 윤활유와 같은 거죠. 그 외에도 의사들의 진료 스케줄 관리와 신입사원 교육도 함께 담당해요. 3교대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만큼 업무량은 엄청나죠.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병동간호사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의사의 부담을 일정 부분 나눠지는 느낌인데 여기에 외래 간호사의 특성이 있는 걸까요? 얼핏 들어봐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모든 민원의 정점이 외래간호 파트라고 얘기하죠. 환자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서거든요. 의사를 보는 시간은 3분이고 그 전과 후의 일을 우리가 담당하잖아요. 원활하게 잘 돌아가면 만족도가 크게 올라가지만 조금이라도 삐걱대면 민원이 쏟아져요. 의사들의 불편과 환자의 불편 모두 저희 몫이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기지 발휘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저처럼 경험 많은 간호사들을 배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환자가 원하는 부분과 불만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는게 업무의 핵심이니까요.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없이는 버티기 힘들어요. 하루에 많게는 100여명에 달하는 환자를 보며 그 판단을 해야 하니까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보람도 많은 부서죠.
하루에 100명을 상담한다. 정말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환자도 있지만 불편한 환자들도 많은게 사실이잖아요. 좀 무거운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실때가 언제인지 궁금해요. 많은 후배들도 이런 부분을 궁금해 하거든요.
결국 사람이 가장 힘들죠. 대형병원이다 보니 흔히 말하는 강약약강인 환자들이 있어요. 강한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들.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차별에 익숙하고 존중보다는 멸시에 익숙한 이기심에 빠져있는 환자들이 있죠. '내가 누군데'하시는 분들.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가 공평해야 하거든요. 당연하죠. 가장 차별이 없어야 하는 곳이 병원이에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반말을 하며 '내가 누군데 바로 진료가 안되냐'는 식으로 차별을 요구하죠. 저는 강강약약형 인간이기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 주먹이 불끈 쥐어져요.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언정 절대로 이러한 차별행위를 용납하지 않죠. 그래서 이렇게 힘들게 사나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스트레스로 힘들지만 그만큼의 보람이 있기에 버틸만 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버티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사람때문에 힘들지만 사람때문에 치유를 받아요. 제가 맡고 있는 각막 분야는 합병증이 상당히 많거든요. 퇴원했다가 다시 들어오고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시 진료를 받고 하죠. 차별을 요구하는 환자도 있지만 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정말 열심히 치료에 임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퇴근하고 혼자 공부를 해요. 책도 찾아보고 논문도 뒤지고 하면서. 그래서 다음에 환자를 만날때 이런 얘기를 해줘야 겠다. 이런 방법도 설명해 줘야 겠다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간호사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요'라고 말해주는 환자들도 생겨요. 그게 바로 보람이죠. 아! 간호사가 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은?(웃음) 간호사는 결국 환자와의 관계에서 힘들고 또 환자에게 힘을 얻는 직업이에요. 그렇기에 환자옆에 있어야 하고 환자와 함께 해야 하죠.
그렇기에 전에 말씀하신 기지 발휘를 포함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매우 중요할 듯 해요. 결국 환자로 인해 힘들고 환자로 인해 보람된다면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런 것들이 중요해보이고 하고요. 외래간호사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랄까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모든 의료인이 마찬가지겠지만 간호사도 경력이 쌓이고 하다보면 은연중에 환자에게 지시나 충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인으로서 답답하고 환자가 잘 따라와줬으면 좋겠고 하다보니 당연한 일일수도 있죠. 하지만 답은 상대에게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관점이 달라져요. 의료인이 아무리 강조해봐야 환자가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거든요. 금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수술을 받고 담배를 피면 안된다는 것은 환자도 알아요. 아무리 '담배 피시면 안되요', '절대 금연입니다' 얘기해도 피시는 분들은 피시거든요. 이때 필요한 것이 결국 라포르에요. '이 어려운 수술도 이겨내셨는데 이번 기회에 담배도 한번 끊으시면 가족들이 정말 좋아할꺼 같아요'라던지 하는 방법으로 동기를 주는거죠. 의료인이 아무리 똑똑해도 환자를 바꿀 수는 없어요. 끊기있게 환자를 지켜보며 동기를 주는 것. 그것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죠.
그렇게 벌써 20년을 간호사로 살아오셨어요. '민원의 정점'이라고 포현하신 외래 간호파트에서도 상당한 경력을 쌓으셨고요. 언뜻 보면 간호사로서의 삶에 대부분을 지나오신 듯 한데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간호사가 사실 쉬운 직업은 아니에요. 그렇기에 매번 목표를 가지고 버텨보자는 의지로 위기를 넘겨왔죠. 전문간호사를 따자. 외래 파트를 해보자 라는 식으로요. 이루고 나니 기쁘기는 하지만 평생을 이끌어줄 목표는 아니었다 싶어요. 이러한 고민과 위기를 후배들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간호사가 이직률이 정말 높은 직업이잖아요. 이유가 있거든요. 대부분이 감정 소진때문에 나가요. 감정이 닳고 닳아서 황폐해진 상태로 병원 문을 나서는 거죠. 그래서 코칭을 생각해봤어요. '간호사 라이프 코치'정도 될까요? 흰머리가 뒤덮인 선배 간호사가 자리에 앉아서 후배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자신의 꿈과 목표에 대해 대화하고. 힘든 부분이 있으면 어짜피 내가 걸어온 길이기에 그들이 스스로 간호사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용기도 주고. 결국 모든 답은 스스로에게 있거든요. 그런 답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능력이 된다면 그러한 센터를 만들고 또 다른 흰머리 선배 간호사를 키우고 하면 더 좋겠죠.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 될듯 해요. 사실 '나는 간호사다' 공통 질문이기도 하고요.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20년차 간호사로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것만을 꼭 알아뒀으면 한다 하는 것이 있을까요?
사람이 미래다?(웃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간호사가 굉장히 힘든 직업이거든요. 특히나 사람속에서 환자속에서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래요. 아까 말했듯 결국 사람으로부터 힘들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요. 내 옆의 동료, 환자들을 소중하게 여기다보면 어느새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꺼에요. 다음으로 꿈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웅대한 꿈 말고 단계단계 이룰 수 있는 꿈이요. 20대의 꿈, 30대의 꿈, 40대의 꿈, 50대의 꿈. 이렇게. 그렇게 크게 크게 보다보면 힘들 과에 있을때도 편한 과에 있을때도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어요. 사실 꿈이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많거든요. 순간의 모욕감과 좌절을 느끼기도 쉽고. 병원에만 목매지 말고 세상을 크게 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진짜로 원하는 꿈이 있으면 작은 장애물들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꺼에요. 그래도 안되면 찾아와요. 흰머리 선배 간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