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세대 철학자 김형석 박사(97세)의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 나오는 문구로 지난 9월, 고대구로병원 교수를 정년퇴임한 오동주 교수에게도 깊은 영감을 줬다.
오 교수는 고대구로병원장에 이어 고대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대한의학회 부회장 등 병원은 물론 학계까지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굵직한 인물.
워낙 명성이 높은터라 병원 측에서도 남아줄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2차병원인 뉴고려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조금 더 편안한 길이 있었다. 진료시간도 짧고 한가한…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우울해지고 밤에 잠이 안왔다. 그런데 뉴고려병원에 가기로 결심하면서부터는 배에 힘이들어가고 신이난다. 출근하는 아침이 즐겁다."
실제로 오 교수는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고. 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외래진료를 소화하고 있으며 스텐트 등 시술도 대학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때보다 일이 더 늘었다.
대학에 있을 땐 후배 의사들이 시술 준비부터 상당부분을 맡겼지만 이제는 약물투여부터 상당부분을 그가 직접 챙긴다.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오랫만에 다시 책도 찾아보고 마치 학생이 된 것 같아 설렌단다.
어느새 그의 열정이 입소문을 탔는지 뉴고려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지 2개월여 지났지만 벌써 일부러 그를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자리를 옮기고 난 직후에는 기존 대학에서 진료받던 환자가 일부 찾아오더니 이제는 김포, 인천 등 지역 환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오 교수는 매일 신환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져 지낸다.
"대학에 있을 땐 하루에 80~90명씩 밀려오는 환자를 진료했지만 여기서는 여유있게 진료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점점 신환이 늘고 시술 건수가 증가할수록 바빠지겠지만 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현재가 즐겁다."
오 교수의 맨파워에 뉴고려병원도 심장내과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15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시술 장비를 구축했는가 하면 오 교수를 제외한 2명의 스텝 이외 추가 의료진 채용도 검토 중이다.
그는 벌써 지난주까지 총 8명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받아 스텐트 시술을 실시했다. 죽음의 문턱에 갔던 환자를 당일시술, 당일퇴원하면서 환자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을 때면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심근경색환자 등 중증도 높은 환자군이 늘어나는 것 같아 더욱 힘이나고 그들을 잘 치료해서 퇴원시킬 때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의료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얼마 전 열린 대한심장학회 메인 행사 중 하나인 라이브 수술 세션 좌장을 맡아 진행했는가 하면 오는 12월까지 심혈관중재학회 등 다수의 학회에서 좌장 등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일부 지인들은 대학에 남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는 이번 선택에 1%의 후회도 없단다.
"대학에 남았다면 쳇바퀴 돌듯 재진환자를 보며 후배 의사들에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을거다. 또 스스로도 하루하루 큰 의미없이 보냈을거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정년을 앞둔 후배 의사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정년 이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젊음을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