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분담제는 이론상 이상적인 제도다. 정부와 제약사, 환자가 각자 몫의 '위험'을 분담하는 구조로 서로의 이익을 보전한다.
쉽게 말해 아직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신약의 재정적 부담을 보험자(정부)와 공급자(제약사)가 공동 분담하는 데 운영의 묘가 있다.
가입자(환자) 역시 위험을 분담한다.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의 부작용을 감수하는 조건으로 약에 대한 접근성과 희망을 맞교환하기 때문이다.
올해 위험분담제 시행 4년을 맞는다. 이론이 맞다면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약사와 환자들 모두 볼 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위험분담제 시행 2주년을 맞아 실시된 설문조사에는 총 30개 제약회사 중 65%가 향후 신약 급여등재 시 위험분담제를 이용하겠다고 답했지만 위험분담제의 운영 효율성을 두고는 성토가 이어졌다.
제약사의 불만은 주로 위험분담제의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의무화, 적용되는 대상 약제가 제한적이라는 점과 불확실한 계약기간, 환급 비용 외 제약사가 부담해야 되는 이자 및 담보비용 등 부수적인 비용이 큰 점이 거론된다.
흥미로운 점은 위험분담제도를 운영 중인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위에서 거론된 불만들이 주로 '국내용'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위험부담제를 도입했지만 경제성 평가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독일은 제약사가 자유롭게 가격을 정해 향후 비용편익보고서에 따라 환급 및 할인율을 협상한다.
한국만 유독 경제성 평가 제출이 필수 인데다가 위험분담제도 대상 약제 역시 일부 희귀난치성, 항암제에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대체약제가 없어 사실상 경제성 평가가 불가능한 약제에도 경제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왜일까.
위험분담제의 기본 틀은 정부가 신약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는 환자와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보험자 입장, 제약사의 신약 개발 의욕을 북돋는 중간자 역할에 있지만 유독 한국은 이런 역할 대신 '(보험)관리자' 역할에 기울어져 있다.
모순의 근본 원인은 여러 변명에도 불구하고 '위험 분담' 기피에서 기인한다. 적어도 일부 약제에 한정해 위험분담제를 실시한다면 경평 면제에 따른 환자 편익 강화, 그리고 이것이 향후 보험 재정에 미칠 위험을 평가하고 분담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환자는 신약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을, 제약사는 급여 등재 실패 불확실성의 위험을 분담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위험분담제 적용 만료 후 경평을 이유로 보험 급여가를 낮추거나 심지어는 급여화를 거부할 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 위험분담제가 버거운 짐이 아니라 향후 재정 절감을 위한 보험, 즉 위험 헷지(hedge)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4주년을 맞는 위험분담제의 재평가 잣대마저 환자의 접근성 대신 재정 영향 평가에 기울어져 있을 뿐더러 경제성 평가 의무화에 따른 재정 불확실성 기피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의 일환으로 환자의 보장성 강화가 추진되고 있다. 보장성 강화에서는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도 포함된다.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면 경평 말고도 위험분담제의 성과를 공유하고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잣대를 찾을 수 있다. 위험분담제의 '위험 분담'이 제약사와 환자들의 몫으로만 남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