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보다 언론을 통해 '유감'을 표시하고 '사과'를 해 구설수에 오른 이대목동병원. 비단 이대목동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병원들의 흔한 대처법이다.
환자안전 전문가들은 의료사고의 잘못 유무보다 사고로 인한 위해 정도를 먼저 고려해 환자와 소통에 나서야 하고, 소통 후에는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사과법' 제정을 논의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환자안전학회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17일 연세의료원에서 '환자 안전과 소통하기(disclosure)'를 주제로 신년포럼을 개최했다. 이대목동병원이 신생아 집단 사망 이후 유족과의 소통 과정에서 대처가 미흡함에 따라 환자안전학회 차원에서 고민에 나선 것.
환자안전 사건 소통하기란 ▲환자 및 보호자에게 자발적으로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공감 및 유감을 전하며 사건 원인에 대한 조사를 약속하고 ▲사건의 원인이 의료오류임이 밝혀지면 사과를 하며 ▲오류로 인해 환자가 입은 위해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비슷한 유형의 사건 재발을 방지하는 약속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울산대병원 예방의학과 옥민수 교수는 "병원들은 경험한 의료분쟁 사례를 모두 취합해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은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고 있다"며 "설명은 위기 대응의 시작이며 초기에 충분히 설명하는 것은 환자 측이 병원을 더 신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위기 대응에 있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사고 후 과실 유무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환자 및 보호자에게 유감이나 공감을 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의료오류가 확인되면 사과나 미안함의 표현을 전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설명했다.
즉,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사고 과실 유무 또는 확실성의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위해 정도가 얼마나 큰지 파악해서 유감이나 공감 표현이라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과 공감, 사과 후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사과법' 제정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과법은 의료진이 환자안전사건 소통하기를 하는 과정에서 공감, 유감, 사과 등의 표현을 쓴 것에 대해 민사적 법적 책임에 대한 시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을 말한다.
옥 교수는 "개별 의료진의 심적 부담을 다소 줄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안전 사건 소통하기에 대한 긍정적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며 "사과법 제정 관련 법률적 이슈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안전법 입법 청원 당시 법 조항으로 사과의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sorry works) 관련 내용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며 "이대목동병원 사건 유족도 최선을 다했지만 너무 죄송하다는 이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사고 당일 의사가 직접 와서 상황을 설명, 진정성 있는 사과의 말과 함께 앞으로 사고 경위는 지켜봐야 한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사과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청원을 할지 국회에 요청할지 고민 중"이라면서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나 의사나 사고의 말을 녹음해야 한다, 녹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런 삭막한 상황에서는 진심의 공감을 할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실제 의료현장에 있는 간호사, 의사도 사과법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아산병원 이순행 PI팀장은 "대부분의 의료인은 환자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모르고 있다면 굳이 사실을 알려줘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일이 없길 바라고 있다"며 "소통하기를 독려하고 의료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과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인이 공감, 유감, 사과 등의 표현을 해도 민사적 책임에 대한 인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소통하기도 번져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과법 제정 이전에 환자나 의료진이나 환자안전에 대한 문화 조성이 먼저라는 의견도 있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 서희정 팀장은 "사회적인 환자안전 문화 조성이 잘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법으로 사과를 의무화한들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의료진이 환자, 보호자와 얼마나 잘 소통할 수 있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가 잘 안 돼 있다. 문화 조성 사업이 먼저"라고 말했다.
환자안전학회 염호기 부회장 역시 "사과법 도입에 찬성한다"는 전제를 말하고서도 "법이 만들어진다고 환자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환자안전 사건이 발생하면 잘잘못을 따져봐야 하지만 환자, 보호자 슬픔은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위로를 해야 한다"며 "사과법 도입 취지가 소송에서 유불리를 따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정해남 상임조정위원은 사과법이 없더라도 '환자와 소통하기'는 법적 의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정 위원은 "소통하기 문제는 사후설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전 설명 판례는 있어도 사후 설명 의무에 대한 판례는 없다"며 "일본은 사후에 진료기록을 갖고 설명을 안 해줬다고 30만엔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사후설명 의무를 묻는 판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병원이나 의료인이 자발적으로 소통하기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