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발생한 대형 참사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의료계도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적 참사로 주요 현안과 논의가 모두 덮인데다 대대적인 전수 조사와 관리 방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 것.
이로 인해 대학병원을 비롯해 병원과 개원가 할 것없이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며 나름대로의 대비 체제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대대적 전수조사 등 불가피…의료계 대응 마련 분주
28일 병원계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들이 밀양 화재 참사로 인한 후속 조치에 귀를 기울이며 대비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참사가 요양병원에서 일어난데다 사망자만 38명에 달하고 부상자가 151명에 달하는 국가적 참사로 확산되면서 대형 쓰나미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참사 이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이낙연 국무총리, 각 정당 대표와 주요 부처 장관들이 일제히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상태.
특히 요양병원 화재라는 점에서 대책 본부를 보건복지부가 이끌고 있다는 점도 병원계가 긴장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현장에 방문해 안전관리 체계 개선을 이미 공언한 바 있다. 병원에 강도높은 안전 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그 골자다.
여기에 이낙연 총리가 전국 모든 지자체에 대대적 안전점검 조사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조만간 전국 병원에 대한 전수 조사는 이미 확정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전국 모든 의료기관에 대한 화재 안전 점검 등은 이미 피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본다"며 "강도 높은 관리 방안 등도 논의가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들은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며 자체적인 관리 점검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A대학병원은 밀양 화재 참사 하루 뒤인 27일 주말임에도 산하병원장을 비롯한 전 보직자 회의를 소집하고 소방 안전 대책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A대병원 보직자는 "업무가 시작되는 29일부터 산하 병원 전체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시작하기로 했다"며 "꼭 정부 점검에 대비하기 보다는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도 한번 제대로 살펴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B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B대병원은 의료원장 전권으로 29일부토 대대적인 소방점검 체계에 들어갈 계획이다. 관내 소방서 등과의 협조를 통해 모의 훈련 등까지 검토 중인 상태.
B대병원 보직자는 "29일부터 5일간 병원 전체 시설에 대한 소방점검을 시작하고 부서별 관리 방안도 요구한 상황"이라며 "관내 소방서의 도움을 얻어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고 전했다.
비단 대학병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선 의원급 의료기관들도 점검에 들어간 상태다. 관할 보건소 등도 혹여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자체 점검을 유도하고 있다.
C의원 관계자는 "보건소로부터 자체적인 점검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의원급인 만큼 온열기 등 난방시설 등에 대한 점검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의료계 주요 현안 논의도 올스톱…역풍에 대한 우려 급증
이렇듯 밀양 화재 참사로 의료계가 대 혼란에 빠지면서 굵직한 현안 논의들도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들어갔다. 혹여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우선 28일로 예정됐던 전국 의사 대표자 회의가 긴급 논의를 통해 잠정 연기됐다.
이 자리에서 의료계 리더들은 의정협의에 대해 평가하고 결렬시 진행할 투쟁 계획을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상황에 투쟁 계획이 나올 경우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로 잠정 연기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비대위 관계자는 "전 국민들이 비통한 상태에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 의정협의를 운운하며 의료계의 요구 사항을 전달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며 "당연히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해 과연 논의가 진행중이던 다른 사안들의 진행 여부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문재인 케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던 의병정협의체 논의는 물론 의한정협의체 또한 2월 초 협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밀양 화재 참사 대책본부를 보건복지부가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의병정협의체, 의한정협의체 논의는 연기되지 않겠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다. 이미 이에 대한 데드라인이 30일로 확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논의 시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욱 시급한 상태.
의협 관계자는 "다른 사안은 몰라도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논의는 30일로 일정이 확정돼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결론을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의협과 병협 모두 많은 생각과 논의를 하고 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듯 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두고서는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의 거취와 비대위 등의 대응이 걸려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안들도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비대위는 28일 개최 예정이던 전국 의사 대표자 회의에서 의료전달체계 강행에 대한 책임을 물어 추무진 회장에 대한 결의안을 논의할 계획에 있었다.
이러한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면서 일각에서는 1월 안에 추무진 회장에 대한 탄핵안을 또 다시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의료전달체계 개편 권고안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거나 추 회장에 대한 탄핵안 등으로 혼란이 일어날 경우 국가적 참사 앞에서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서로가 모두 신중한 고민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 임원을 지낸 D인사는 "사회적으로 대대적 파장을 일으킨 이대 목동병원 사태까지 덮어버린 국가적 참사인데 지금 상황에 무슨 얘기가 나와도 역풍을 맞기 좋은 상황"이라며 "누군가에겐 득이 되고 누군가는 실이 될겠지만 강한 외풍이 예상되는 시기에 계산기를 두드릴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