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협의 결렬과 비상대책위원회 해산으로 구심점을 잃어버린 의학회와 의사회들이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놓고 고민에 빠져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해야 할지를 두고 계산이 분주한 것.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며 장고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A학회 이사장은 10일 "대관 라인을 통해 들어보니 조만간 복지부가 학회에 비급여 자료 제출을 요구하지 않을까 싶다"며 "정식으로 요청이 올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의협과 비대위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의협 패싱 얘기가 나오고 하니 이대로 괜찮은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복지부는 의정협의가 결렬되자 지난 6일까지 비대위가 자료를 넘겨주지 않을 경우 직접 개별적으로 각 의학회와 의사회에 접촉해 자료를 받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비대위가 이들로부터 받은 자료를 주지 않아 비급여의 급여화 작업에 차질이 있는 만큼 복지부 차원에서 직접 의견을 듣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집단 휴진과 궐기대회 등을 내세우며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 등이 강하게 반발하자 우선 일주일의 시간을 더 제시한 상태.
청와대의 주도로 진행되는 문재인 케어의 흐름인 만큼 복지부로서도 만약 이번주 내에 자료를 받지 못할 경우 개별 접촉이 현실화될 확률이 높다. 의학회와 의사회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B의사회장은 "문 케어를 비롯해 비급여의 급여화를 반대하는 입장으로서 명분으로만 치자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혹여나 다른 의사회에서 자료를 내고 우리만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의정협의에서 비대위가 뭔가 결판을 내는 듯 보여 고민이 덜했는데 지금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촉각을 기울이며 지켜보고 있다"며 "다들 마찬가지 상황 아니겠냐"고 전했다.
문 케어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명분상으로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이 맞지만 실리적으로 득실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이에 따라 의협과 최대집 당선인은 복지부의 개별 접촉에 절대 응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의협에 힘을 모아달라는 호소다.
최대집 당선인은 "당선인 명의로 전 학회와 의사회에 공문을 보내 복지부의 회유에 넘어가선 안된다는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의협이 13만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만큼 의협 패싱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각 전문과목별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다 회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하는 학회나 의사회의 입장에서 회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과연 집단 거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학회 이사는 "사실 이미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항목과 의견은 모두 정리를 끝내고 의사회와도 얘기를 마친 상태"라며 "결국 비급여 항목들을 얼마나 더 지켜내는가 하는 싸움 아니냐"고 되물었다.
아울러 그는 "솔직히 지금 입장에서 복지부가 수가와 항목 분류에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흔들리지 않을 학회가 있겠나 싶다"며 "다들 듣는 귀가 있는데 명분만 세우며 독야청청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