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문재인 케어 시행을 위해 대한의학회 및 대한병원협회와 직접 접촉에 나서면서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대한의사협회 패싱의 그림자가 다시 엄습하고 있다.
의정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이미 사실상 개별 접촉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협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 각개격파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주부터 의학회 산하 전문학회를 대상으로 예비급여 항목에 대한 개별 논의를 시작하기로 확정했다.
복지부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은 "의협 비대위에 이번 주부터 각 개별 학회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선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학회별 맨투맨으로 논의를 진행하며 상반기 내로 의견 수렴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간 의협 비대위를 비롯해 최대집 의사협회장 당선인과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끝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개별 접촉 카드를 완전히 오픈하고 본격적인 움직임에 들어간 셈이다.
실제로 일부 학회들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미 사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학회에 의견을 타진하고 나섰다.
별도의 사안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 외에도 현안과 함께 학회와 만남을 이어가면서 이러한 자료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A학회 보험이사는 "지난번 예비급여와는 다른 사안으로 복지부와 만남을 가졌을 때 이미 문 케어와 예비급여에 대한 운을 뗀 적이 있다"며 "이미 복지부는 개별 접촉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이 정도로 준비가 되었다면 사실상 각 학회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 지도 계획이 섰다는 의미"라며 "복지부가 이러한 각개격파 전략에 일가견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복지부가 의협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별 접촉을 강행하면서 또 다시 의협 패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상 이미 패싱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비대위 구성과 전국 의사 총 궐기대회, 의병정협의체, 강성 의협회장 당선 등에 발이 묶여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복지부가 이미 승산을 계산하고 움직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B의사회장은 "집단 휴진 등 투쟁 계획이 유보되자마자 곧바로 개별접촉에 들어갔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느냐"며 "개별 학회를 통해 예비급여 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승산이 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의협 패싱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미 복지부는 패싱을 공식화하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이미 비대위와 의협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별도 자체 조사 하겠다는 것이 이 의미 외에는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최근 임영진 체제로 수장이 바뀐 병협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라는 설명이다. 문 케어에서 병원급 의료기관의 비중이 큰 만큼 병협을 안고 간다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아직 당선인 신분인 임영진 병협 회장 당선인과 이례적으로 환담 자리를 만들며 회동을 가졌다.
최대집 당선인이 당선을 확정짓자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이 전화로 축하 인사를 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행보다.
의협 비대위가 의병정협의체를 탈퇴한 가운데서도 의병협의체로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전하고 집단 휴진 논의시에도 의협과 선을 그으며 불참의 의사를 전한데 대해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재 최 당선인을 비롯해 의협이 공식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상황에서 이같은 회동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
결국 의료계의 도움이 필수적인 문 케어를 추진하는데 있어 의학회, 병협과 담판으로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의협 임원을 지낸 C교수는 "당선된지 불과 몇일 밖에 되지 않은 회장과 장관이 만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지 않겠냐"며 "병협을 카운터파트로 삼겠다는 의지를 의협을 포함한 대내외에 공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대집 당선인을 포함한 의협 인수위 등은 의협 패싱에 대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병협과 의학회도 의협의 산하인 만큼 패싱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는 설명이다.
최대집 당선인은 "13만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는 대한민국에 오직 의협 밖에는 없다"며 "의학회, 병협도 결국 의협의 산하단체인 만큼 패싱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이를 좌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