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법정관리로 숨통은 텄지만 제일병원이 여전한 자금 동맥경화로 신음하고 있다.
정상화를 목표로 외래 진료부터 서서히 기능을 회복해 환자들이 돌아오고 있지만 인력 체계 구축에 한계를 드러내며 걸음이 더뎌지고 있는 이유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6일 "ARS(자율회생절차)를 통해 막혀있던 자금이 그나마 흐르기 시작했지만 정상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돌려막기로 간신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외래에 필요한 최소 인원 외에는 예약 시스템조차 가동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상태"라며 "인력 체계 구축이 가장 시급하지만 지금의 자금 상황으로는 답을 내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일병원은 파산 직전 법원이 법정 관리를 승인하면서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을 주축으로 채권자들과 논의를 이어가며 자율 회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계속되던 추심 절차가 멈추면서 예금 등 현금성 자산에 대한 압류는 일부 해제된 상태. 사실상 전원을 위한 진료기록 업무만을 남겨놓은 채 병원 문을 닫은지 3달여 만이다.
제일병원은 우선 약품과 기기 등에 대한 대금을 일정 부분 지급해 외래 진료 기능부터 살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이 한정적이라는데 있다. 그나마 묶여 있던 예금 등에 희망을 걸었지만 수년째 계속된 자금난으로 자산 간에 담보가 얽혀 있어 움직일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채권단의 압류와 추심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현재 정확한 자금 상황은 채권단과 이사진, 노조 일부 외에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고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징후가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압류가 해제되자마자 지급하기로 했던 직원들의 밀린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등의 상황을 보면 이미 자금 흐름이 막혔다는 것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현재 퇴직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한 퇴직금 등으로 걸려 있는 가압류는 이번 회생절차와 채무 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법원이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동맥경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금난으로 가장 시급한 조치인 의료진 충원이 막혀있다는 점이다. 현재 제일병원은 일부 주니어 스텝들을 제외하고 의료진이 모두 이탈한 상황인 이유다.
결국 진료 정상화를 위해서는 의료진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주머니 사정으로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 큰 난제는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인력에 대한 구조 조정 절차도 쉽지 않은데 있다. 의사와 간호사, 보조 인력, 행정 인력간에 비율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를 건드리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제일병원 보직자를 지내고 최근 자리를 떠난 A교수는 "지금 제일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인력과 행정 인력의 불균형"이라며 "근무인력 1000명 중에 의사가 100명, 간호사 200명, 보조인력 300명, 행정인력이 400명이라고 하면 100명으로 병원 규모가 축소된다 해도 10명, 20명, 30명, 40명으로 비율이 유지돼야 병원이 굴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지금 제일병원은 파산 직전까지 몰리며 이러한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태"라며 "한정된 자금으로 비율을 맞추고자 하면 의료진을 뽑으면서 인위적 구조조정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버텼던 직원들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