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번져가면서 의료계에도 파장이 미칠지 주목된다.
이미 일본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 다수의 품목들이 국내에 진출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기기나 약품 변경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본계 제약사와 의료기기 회사는 물론 국내 의료기관과 의료인들까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촉각을 기울이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전국적으로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데다가 구체적인 회사명과 제품까지 공유되며 그 어느때보다 반일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영향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우선 현재까지 의료기기나 치료재료 등에까지는 불매 운동에 영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대체가 불가능한데다 고가의 기기와 재료가 많다는 점에서 영향이 미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한 임원은 "아무리 불매 운동이 거세진다 해도 내시경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올림푸스가 이미 세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할 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는데 대안이 없는 얘기"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의료기기를 비롯해서 치료재료 등에서 일본 제품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제품들이 꽤 있다"며 "아무리 불매 운동이 거세진다 해도 영향을 줄 수 없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전문약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처방이 이미 정해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1대 1로 대체가 가능한 약물이 아니라면 처방 변경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혹여 환자가 직접 처방 변경을 요구하거나 하는 등의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현재 약물을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제약사는 지난해 2800억원대 매출을 올린 한국아스텔라스를 필두로 한국다케다, 한국에자이, 한국오츠카, 한국다이이찌산쿄 등 10여 곳이다.
이들은 전문 분야별로 특성화된 약물을 바탕으로 매년 성장제를 이어오고 있는 상황. 실제로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에 이어 의약품 수입 비중이 두번째로 높은 나라다.
최근 적응증 삭제로 큰 논란이 됐던 도네페질 제제인 아리셉트(에자이)를 비롯해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하루날디(아스텔라스), 고혈압 치료제 세비카(다이이찌산쿄) 등은 우리나라 전체 전문 의약품 시장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다빈도 처방 약물이다.
특히 아스텔라스 같은 경우 하루날디와 엑스탄디 등을 앞세워 비뇨의학과 분야에서는 상당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 빅5병원의 비뇨의학과 교수는 "엑스탄디 같은 경우 빠르게 급여가 인정될 만큼 전립선 암에 있어 상당히 기대가 높은 약물"이라며 "환자를 위해 최상의 선택이라면 어느 나라 제품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불매 운동에 동참한다 해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모든 분야에서 불매 운동이 일어난다 해도 의약품만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보장되는데다 이미 익숙한 약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정보에 보다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미 일반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각종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불매 운동 품목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비타민 제제 일부를 비롯해 잇몸약, 파스, 소화제 등이 포함돼 계속해서 확산되는 중이다.
한 의사회 임원은 "나도 SNS에서 공유된 리스트를 봤다"며 "설마설마하면서 지인들과 농담 삼아 얘기한 정도인데 의약품 분야까지 불매 운동이 확산돼 적지 않게 놀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전문약이야 영향이 미비하겠지만 일반약이나 건기식 같은 경우 선택의 문제인 만큼 상당한 타격이 있지 않겠느냐"며 "우리 병원 건물 약국도 이미 전면에 걸었던 물건들을 이미 매대에서 다 뺀상황이다"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