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주 임신부의 낙태 요구를 들어준 의사.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일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이 의사의 행동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 22주까지를 낙태가 가능한 한도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34주의 임신부를 낙태하고, 게다가 낙태 과정에서 살아난 아기가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 둔 의사의 행태는 윤리와 한참 멀어보인다.
이 과정에서 의협의 움직임도 아쉽다.
사건은 지난 5월 벌어졌고,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지난달 말 경찰이 해당 의사를 구속한 시점이다. 검찰은 지난 7일 해당 의사를 살인 및 업무상 촉탁 낙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의협의 윤리위 회부 결정은 경찰의 구속 기소 결정 후에도 약 한 달이 지났고 검찰 구속 기소 결정 이후로도 2주만이다. 윤리위 회부 결정에는 언론 보도가 인용됐다.
의료계의 자율징계권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의협의 대응이라고 하기에는 늦었다. 해당 사건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알기 위해 노력했다면 검찰의 구속기소 이전에도 충분히 판단이 가능한 시간이었다.
조사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하기에는 최근 일련의 의협 태도와도 사뭇 다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 논문의 책임저자였던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의협과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대한병원의사협의회 회장을 중앙윤리위에 제소할 때도 검찰이나 경찰의 결정, 단국대병원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았다. 윤리 보다는 '정치'라는 단어와 얽혀 있는 결정이었다. 단국대병원 교수를 윤리위에 회부할 때는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고 비윤리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가 얽혀 있는 문제는 찬반이 갈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번 낙태 의사 사건은 정치와도 상관없고 누가봐도 '윤리'와 직결된 문제다.
의료계가 비윤리적인 의사를 스스로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장하고, 얻어내려면 내부 설득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 법원의 판단을 기다린다면 기존 행정처분을 내리는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무엇이 다른가.
아직 자율징계권이 있는 게 아니다. 자율징계권을 확보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면 누가봐도 '옳지 않았다'라는 판단이 있다면 과감한 결단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의협이 '정치' 보다는 국민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