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정보공개 거부한 대학병원 위법 결정 "생명윤리법과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 의무 있다"
말기암 환자가 신약의 임상 시험에 참가했다면 유가족에게 이에 대한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행정청이 아닌 만큼 공개 의무가 없다고 맞섰지만 법원은 생명윤리법과 정보공개법 모두가 적용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은 말기암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했지만 결국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이 임상 참여 여부를 알려달라며 청구한 정보공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에서 유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10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010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A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14년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가족들은 사망 수개월이 지난 2015년 환자가 임상시험 대상이었는지 사실 관계를 알려달라고 정보 공개를 요구했고 병원은 2019년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유가족들이 병원측에서 임상 시험 참여 여부를 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은 위법하다며 법원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생명윤리법이나 정보공개법이 공공기관이나 행정소송법이 정하는 행정청이 아니므로 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에 요구되는 피고가 될 수 없다고 맞섰다. 현행법상 공개 의무가 있는 기관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을 달랐다. 병원에서 이미 의약품안전규칙이 정하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이자 생명윤리법이 정하는 기관위원회라는 취지의 안내문을 게시하고 있고 의약품 임상시험은 인간대상 연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생명윤리법에는 인간대상연구의 연구 대상자에게 자신에 관한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의약품을 통해 연구 대상자를 직접 조작해 자료를 얻는 연구를 시행한 A병원은 정보 공개 청구의 상대방이 된다"고 규정했다.
이어 "연구대상자의 기관위원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권은 생명윤리법령이라는 규정에 따라 연구 대상자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되는 권리"라며 "임상시험 연구 대상자와 기관위원회가 각자의 권리를 대등하게 주장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만큼 연구 대상자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유가족이 연구 대상자가 아닌 만큼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맞섰다.
연구 대상자인 환자 본인이 요청했다면 당연히 이를 공개했겠지만 유가족들에게 이 권리가 상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단호합 입장을 취했다.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당연한 알권리를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보 공개 청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임상시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따라서 생명윤리법의 규정을 유추해 적용한다면 유족들또한 정보 공개 청구권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특히 해당 병원의 치료중 사망했을 경우 그 유족은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임상시험 대상자였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며 "오히려 이러한 점을 유족들에게 확인시켜줬을때 사망에 대한 각종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청권은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병원이 즉각적으로 이러한 유족들의 정보 공개 청구에 응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고 병원측의 요구를 검토해본다 해도 정보를 공개하지 못할 사정이 없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할때 병원측은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답변을 해야할 법령상의 의무가 있는데도 사건이 접수된 지 4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러한 병원측의 태도는 생명윤리법이 정하는 응답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