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보건당국, 전문가들의 경고 음모론으로 전락 일부 미약한 근거 확대 재생산…"정부가 브레이크 잡아야"
신종 전자담배에 대한 세계 각국의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학계가 나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는 근거가 미약한 정보들이 이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정부와 학계가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경고…위해성 논란 가열
세계적 의학 저널인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지난해 12월 이례적으로 저널에 신종 전자담배에 대한 별도의 코너를 신설해 공개했다.
또한 새해에는 편집 의견을 덧붙여 전자담배와 관련한 질병에 대한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이를 업데이트 하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는 비단 NEJM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세계 3대 저널로 미국의사협회지인 JAMA도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 전자담배와 관련한 임상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액상형 신종 전자담배 사용자가 중증 폐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의학계도 이에 대한 논란으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졌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향을 넣은 전자담배는 완전히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중심으로 일명 EVALI(E-cigarette or vaping product use associated lung injury)라고 명명된 폐질환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고 전문가들은 공통된 목소리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들도 속속 도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보스턴대 의과대학 연구진의 대조 임상 연구가 대표적이다.
총 47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대조 임상에서 신종 전자담배를 사용한 임상군의 LDL콜레스테롤 수치는 97.7mg/dl을 기록해 흔히 연초로 불리는 전통 담배를 피운 사람(86.1mg/dl)보다 오히려 높았다.
이를 근거로 연구진은 신종 전자담배가 오히려 연초담배보다 심장질환과 뇌질환 위험성을 높인다며 이에 대한 자제를 권고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전자담배의 위해성을 경고하고 있다. 신종 전자담배가 더 안전하고 유해성이 없다는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 박인원 이사장(중앙의대)은 "의학자라면 어느 누구도 신종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특히 금연에 도움이 된다던지 보조제 역할로 쓰일 수 있다는 주장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53개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성분 조사를 통해 폐손상 의심물질 검출을 발표한 데 이어 정부가 합동으로 안전관리대책을 내놓고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묵살되는 경고의 목소리…무엇이 이를 막고 있나
하지만 세계 각국 보건당국의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의학적 근거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진실 공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오히려 음모론까지 대두되며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A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전자담배의 위해성에 대해 의견을 낸뒤 몇 달간이나 홍역을 치러야 했다"며 "기사에 대한 비판적인 댓글은 물론이고 학교 메일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비난이 쏟아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정도를 넘어 괴담 수준으로 짜깁기된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결국 의학자들의 근거는 믿지 않고 블로그 등에 올려진 괴담을 더 믿고 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맹신이 생겨나게된 근거는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이뤄진 연구가 시발점이다.
무작위 혹은 이중맹검이나 대조 연구가 아닌 일종의 리포트 형식이었지만 여기에 명시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에 비해 95% 덜 해롭다는 문구는 매우 강력하게 전달됐고 신종 전자담배 애호가들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됐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열린 제7회 전자담배 서밋에서 전자담배 위해성 논란은 관리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일반 담배보다는 유해성이 적은 것이 분명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유해성 논란이 진실공방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의학은 오늘의 진실에 내일 거짓이 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이라며 "수년전에 이뤄진 연구로 더욱 세밀하게 설계된 현재의 임상 연구 결과를 뒤짚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신종 전자담배에 대한 사용 중단을 권고하자 정부가 세수를 위해 전자담배를 규제한다는 음모론도 확산되는 추세다.
세금이 부과되는 연초 담배의 사용량이 줄어들자 전자담배에 대한 공포감을 부추겨 세수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음모론은 인터넷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며 의학적 근거들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협회는 지난해 11월 식약처가 신종 전자담배에서 유해성분 주 하나인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검출됐다며 사용 중단을 권고하자 즉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극소량의 유해물질 만으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며 대응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학계도 보다 확실한 근거를 쌓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역학조사와 임상 보고서만이 아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는 질병관리본부의 용역을 받아 신종 전자담배와 폐질환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대한폐암학회도 유사한 주제로 연구 용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가 나온다고 해도 현재 진실공방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유해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음모론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근거가 힘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금연학회 백유진 회장(한림의대)은 "국내 모 화장품에서 벤젠이 소량 검출된 것만으로도 회사가 망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전자담배에서 검출된 수많은 유해 물질은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만약 음료수에서 그러한 유해물질이 나왔다고 하면 온 나라가 다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이 성분이 전자담배에 들어있다는데 어떻게 덜 해롭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고 아닌 경고 이상의 대책 주문 "정부와 학계 나서야"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진실공방처럼 변질된 지금의 논란을 정부와 학계가 서둘러 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마치 음모론과 같이 정부와 학계의 의견을 몰아가는 현실을 바로잡고 근거를 갖춘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괴담을 지적한 A대병원 교수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왔는데도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이 방관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의사협회가 직접 나서 정리하고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대한의사협회도 대한의학회도 전문가 단체로서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의미"라며 "의협에 이같은 의견도 전달했는데도 여전히 아무 대응이 없다는 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또한 이러한 진실공방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또한 국민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명확한 조사와 분석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미국 등의 대처 등에 맞춰서 정책 방향을 정하거나 여론 등에 밀려 섣부르게 내놓은 방안들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게 된다는 지적이다.
강윤희 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임상심사위원은 "영국 등이 전자담배 유해서 논란에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사전에 엄격한 관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예 어떤 전자담배에 어떠한 성분이 들어있는지조차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관리 사각지대를 방치하다가 과학적 근거가 아닌 대통령의 한마디로 사용 제한 권고를 내리면서 진실공방 사태를 부추긴 것"이라며 "정부가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문제들이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전문가들의 의견과 근거를 종합해 음모론이 새어나갈 수 없도록 명확하게 지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인용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적절한 대처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논란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정부 당국외에는 없다는 의견이다.
백유진 대한금연학회장(한림의대)은 "전자담배에 대한 판매금지를 내린 나라는 30여 개국에 이른다"며 "나라별로 중점을 두는 시각이 상이한 만큼 정부에서도 명확한 정책 방향성을 가지고 규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그는 "누군가는 이러한 논란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고 이는 전문가들의 근거를 통해 정책 입안자들이 해야할 일"이라며 "덜 위험한지 더 위험한지가 주제가 아니라 위험하다는 명제 하나로도 국민건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