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시장'을 설명할 때 늘 붙는 수식어가 있다. '급변하는…' 한국은 눈부신 의학발전 이외 의료서비스 측면에서도 격동의 시기를 지나 세계적 수준에 올라왔다.
국제의료기관 JCI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이 넘쳐나고 어느새 국내 의료기관에 맞는 평가인증 기준을 갖출 정도로 내공을 쌓았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한국 병원을 벤치마킹하고자 찾는 것은 물론 해외 의사들은 의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이처럼 눈부신 성장 그 이면에는 희생과 헌신으로 정신 무장한 의사들이 의료강대국 몫지 않은 의학발전을 이뤄보자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의료시장과 의학발전 속에 열정을 갈아넣어 왔던 의대교수가 '노동조합'이라는 툴을 통해 병원장과의 교섭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잠시, 의료계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대를 거쳐 2020년 현재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근무시간제를 줄여나가고 있다. 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근무를 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다시 의료계로 돌아와보면 일선 교수 특히 주니어 교수들의 삶은 처절할 정도다. 최근 대한의학회 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에 게재된 논문 중 울산대병원이 전공의 없이 교수들로만 중환자실을 케어한 결과 의료질이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를 위해 스텝 즉, 교수들은 주당 평균 90시간을 근무하고 야간 당직 20시간을 소화해왔다는 대목이다.
주 90시간. 주5일 근무한다고 치면 1일 18시간을 일해야하고 주6일 근무한다고 하더라도 15시간은 일한다는 의미다. 하루 24시간 중 15시간을 제외한 9시간 동안 수면, 식사, 휴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40대에 접어든 의대교수에게 이같은 스케줄이 과연 지속가능할까.
극한 상황에 이른 교수들이 '노조'라는 창구를 통해서라도 변화해야만 지속가능해진다는 결론에 이른 듯 하다.
그렇다면 병원 경영진, 즉 병원장은 죽일 놈인가. 그렇게 결론짓기엔 명쾌하지 못하다. 대학병원장, 그들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환자를 진료했던 의료진 중 한명이었을테니 말이다. 병원장직을 맡고 경영을 이끌어야하는 입장이 돼 보니 의료진을 쥐어짜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악역을 맡게 되는 식이다.
누가 그 역할을 맡더라도 크게 다를 수 없는 게 지금의 대학병원 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게다가 보장성강화를 외치는 정부는 뒷짐만 지고 최저의 비용으로 최대를 효율을 이끌어낼 제도를 쏟아내고 있다.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도태하는 무한경쟁의 의료환경 속, 노조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