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커스]코로나19로 대학병원 교수도, 개원의도 일상 붕괴 진료 스트레스에 매출 걱정, 업무 폭탄에 '삶' 자체가 조마조마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집어 삼켰다. 모든 이가 마스크와 한 몸이 됐고 손 소독제는 겨울철 핸드크림처럼 쓰인지 오래다. 이 가운데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의 일상도 180도 변해버렸다. 집과 직장만 오가다 보니 언제 모임을 가졌는 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학회도 취소돼 의사로서의 활동도 줄었다. 개원의는 당장 이번 달 직원들의 월급부터 걱정이다.
9일 메디칼타임즈는 코로나19가 보건‧의료계 종사자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 취재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 이비인후과의원을 운영하는 개원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를 재구성해 봤다.
이들은 정부가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벌이고 있는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잠시 멈춤'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호소했다.
컨퍼런스, 학회, 연수 '취소'가 일상이 된 대학병원 교수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 중인 이성남씨(57‧가명)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예약환자 중 20%가 줄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출근시간대 인파를 피하고자 더 일찍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 때문에 보통 7시 50분 회진을 돌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20분 앞당겨 회진을 돌고 난 후 컨퍼런스를 준비한다.
하지만 컨퍼런스조차 코로나19 확산 이 후 병원 내에서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취소되기 일쑤다. 다학제 진료도 마찬가지다. 진료과목별 의료진과 간호사에 영양사까지 얼굴을 맞대고 환자 치료계획을 설계하던 일상이 그립기만 하다.
이어진 오전 외래 진료시간. 비뇨의학과 중에서도 전립선암 분야가 전문인 이 교수의 특성상 환자 대부분이 평균 75세가 넘는 고령 암 환자들이다.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연령대. 그래서 이 교수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2월부터 자신의 진료실 의자 옆에 병원에서 나눠준 의료용 '파란 마스크'를 가져다 놓고 환자 손에 쥐여주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병원서 태클을 걸어왔다. 병원서도 마스크가 부족한 탓에 간호사를 통해 마스크 지급량을 체크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외래가 끝난 오후 시간에는 간호사가 화요일마다 코로나19로 진료예약이 취소된 4~5개의 차트를 들고 온다. 이 교수가 말하는 가장 스트레스 받는 시간. 진료예약을 취소한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괜찮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는 것이 주된 일상. 힘들기보다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환자들의 걱정을 어떤 말로 안심시켜야 할지 생각해내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이어진 저녁시간. 이 교수도 원하지 않은 '저녁이 있는 삶'이 찾아 왔다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연구실을 나와 병원 쪽으로 퇴근하는 데 모르는 이들이 인사를 한다. 병원장 지시로 신입직원과의 회식도 금지시킨 탓에 얼굴도 모를뿐더러 마스크까지 써서 누구인지 조차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교수는 학회 이사장까지 지낸 터라 주요학회 초청과 6개월 해외 연수가 잡혀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취소돼 버렸다. 이 교수는 "지난 한 달 동안 모임을 가져 본적 없다"며 "해외학회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각이 생긴 것 같아 너무 화가난다"고 하소연했다.
시민과 함께 약국 앞에 줄을 선 의원 원장
지방 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인 김기섭씨(46‧가명)는 오전 9시 자신이 운영하는 의원 건물 1층에 있는 약국부터 찾았다. 약국 문을 열기 전부터 10명이 넘는 마스크 구매자들이 줄지어 섰지만 당장 오늘 쓸 마스크도 부족한 탓에 시민들과 함께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앞으로 마스크 배급제가 시행되지만 나아질 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지난 한 달 동안 의원을 가기 전에 약국에 줄을 서는 것이 일상이었다. 일반 의원은 지원받는 것이 적으니까 현재로서는 각자 도생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겨우 줄 서서 마스크를 산 뒤 출근하면 간호조무사가 더 큰 걱정을 김 원장에게 안긴다.
의료용 알코올마저 떨어져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일 내로 알코올을 사지 못한다면 주사는 못 놓고 약 처방만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소독용 알코올값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3배 가까이 급증했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진료시간이 마감되는 오후 1시. 평소에 50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오전에 다녀간 환자는 20명 안팎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김 원장은 "한 달 매출이 40% 넘게 줄었다.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의 처지가 비슷하다"며 "환자 방문이 뜸해지면서 말 그대로 '멍 때리는' 경우가 늘었다. 그래서 인지 진료시간인데 카톡으로 신세한탄 하는 의사 친구들도 많아졌다"고 한숨을 내쉰다.
이어진 점심시간. 자신의 점심부터 챙기려는 직원들을 보면서 걱정은 더 커진다. 직원들의 월급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마다 들어온 날이 달라서 월급날이 모두 다르다"며 "다른 것은 몰라도 직원들 월급날은 맞춰줘야 하는데 매출이 반 토막이 난 터라 걱정이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참에 코로나19가 터져 버렸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일과 삶 모두 힘들어진 심평원 심사직
심평원의 이전으로 지난 12월 서울에서 원주로 이사한 김혜정씨(35‧가명)는 지난 2주 동안 집과 직장만을 오갔다. 직장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해 '유연근무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쏟아지는 업무 탓에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다.
다른 부서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한숨이 절로 난다. 심평원은 3월부터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많은 제도 시행을 준비해야 하지만 모든 것이 '올 스톱'되고 그야말로 코로나19 '비상대기' 상태다.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층마다 시간대를 나눠 밥을 먹을 먹어야 하고, 마주 앉아 식사하는 일도 옛날 일이 됐다.
실제로 심평원은 의료기관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능동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수시로 수가 개발을 해내야 하는 동시에 안심병원 지정과 관련된 모든 업무까지 맡아 운영 중이다. 병‧의원 현지조사를 나가지는 않지만 이들은 역학조사관으로 파견돼 코로나19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최근 출근할 때마다 언론에 나온 '심평원' 관련 기사를 챙기는 습관도 생겼다. 시시각각 바뀌는 보건당국의 코로나19 대응 정책을 살피기 위함이다. 보건당국의 지침 변화는 곧 일이 더 하나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DUR 시스템.
김씨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심평원이 맡아 수행하는 DUR 시스템이 알려지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문의를 받았다"고 한다. 일례로 신천지 신도 명단을 DUR에 포함하면 안되냐는 질문까지 받아봤을 정도다.
여기에 원주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작스럽게 나오면서 일뿐만 아니라 생활에까지 지장을 주고 있다고. 수시로 울려대는 확진자 동선 문자에 불안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간다. 김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심평원 앞 의원과 약국 모두를 다녀갔다고 해 걱정"이라며 "코로나19에 걸리면 기관 전체가 완전히 끝장이다"고 불안함을 호소했다.
메디칼타임즈가 취재한 보건‧의료계 종사자 세 사람 모두 코로나19에 따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잠시 멈춘' 삶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