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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이 바라본 '전화 진료'…코로나 이후에도 가능할까

박양명
발행날짜: 2020-05-21 05:45:56

[메타포커스]대법원 판례로 본 비대면진료 가능성 전망
법조계, 제도화는 가능…현재 시점에서 확대해석 금물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전화상담 및 처방'이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전화상담 및 처방, 일명 전화진료 거부를 권고한 상태. 정부는 한시적인 조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비대면 진료 산업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모순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시적'이라는 단어가 빠졌을 때 환자와 의사 사이 전화진료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사실상 법 개정 없이도 전화진료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게 다수 의료전문 변호사의 입장이다. 대법원의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대법원은 판단하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료법 17조 1항에 있는 '직접적' 진찰의 의미를 넓게 해석한 것.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이뤄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을 했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라는 게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다.

지난 14일 대법원은 보다 구체적인 범위를 내놨다. "전화통화만으로 진찰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대법원은 밝히고 있다.

대면 진찰 한 번 한 적도 없고 전화 통화 당시에도 환자 특성 등에 대해 알고 있지도 않았으면 진찰을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즉, 대법원은 일찌감치 비대면 진료 가능성을 열어놓고 최근 그 범위를 구체화 한 것이다.

법조계는 대법원 판결을 놓고 "재진 환자에게 전화진료 가능하다", "전화진료 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확대 해석은 금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태섭 변호사(법무법인 CNE)는 "대법원은 직접 진찰의 해석 과정에서 일정한 조건 하에 비대면진료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판결에서도 최소한이라는 단어를 쓰며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진 환자니까 잘 알고 있다는 섣부른 판단으로 전화처방을 했다가는 오히려 의료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계했다.

예를 들어 초진 환자가 고혈압 진단을 받았는데 이후 전화로 당뇨병 증상에 대해 처방하면 아무리 재진 환자라고 해도 전화처방을 해서는 안 된다.

전화진료 제도화, 법적 근거는?

대법원이 전화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제도화를 위한 법적 근거로서는 충분하다는 데 의료전문 변호사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대법원이 의료법 17조에 대한 해석으로 비대면진료 가능성을 열었지만, 검찰은 의료법 33조 1항(개설지 외 진료)를 근거로 전화진료의 위법성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관련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비대면진료를 정면으로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조항은 없다"라며 "의료법 34조 의사와 의사 사이 원격진료 허용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위반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법에서 강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조항 때문에 의료인이 환자한테 비대면진료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화진료 후 의료분쟁에서 책임소재는?

전화진료에 대한 법적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 부분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부는 한시적 전화진료 상황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대면진료 시 의료분쟁 책임 소재와 같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전화진료 반대 이유 중 하나로 법적 책임 소지 불명확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전화처방을 허용한 것은 이해하지만 책임소재에 대해 범위를 좁혀서 보겠다거나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등 의료진의 책임을 감경할 수 있는 자구책을 줬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화진료 제도와는 의료분쟁 가능성을 상당히 높일 것"이라며 "기술적, 의학적으로 의료과실, 오진 가능성을 최대한 낮춘 상황에서 도입이 필요하다. 법적 책임소재 문제는 적어도 의사-의사 원격의료를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의료법 제34조 원격의료 조항에서 원격지 의사와 현지 의사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원격지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해서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진다. 원격지 의사의 원격의료에 따라 의료 행위를 한 현직의사는 그 의료 행위에 대해 원격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으면 환자에 대한 책임은 현지 의사에게 있는 것으로 본다.

반면 정혜승 변호사는 전화진료에서 책임 소재 문제를 새롭게 들여다봐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정 변호사는 "전화진료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평가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며 "의사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진료를 했는지, 환자는 얼마나 성실히 대답을 했는지 등 주의 의무가 새롭게 평가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