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에서 발간한 2018~9년도 『조정・중재 통계연보』에 따르면 자동개시 사건은 2017년 383건, 2018년 591건, 2019년 522건이 접수됐다.
자동개시 사건을 포함한 조정개시율은 2016년 45.9%에서 2017년 57.2%로 소폭 증가했지만 조정성립률은 자동개시 이후 10%p 가까이 하락했다. 2016년 64.4%에서 2017년 50.1%로 낮아진 것.
이와 같은 결과는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의 자동개시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자동개시 제도가 가지는 체질의 변혁(變革)이 없다면 조정중재원의 성장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의료행위 등으로 인해 사람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에 대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당사자나 그 대리인이 조정재원에 분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의료기관이나 보건의료인인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각하 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따라 조정개시율이 높지 않았다.
그러자 예외 절차로써 자동개시 절차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문제로 환자가 (해당 의료기관 여부를 불문하고) 사망하면 왜곡된 사실관계라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판단하지 않은 채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조정 절차가 개시된다.
현실은 보건의료인 폭행, 협박, 업무방해 등을 각하 사유로 규정한 외형적인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조성하는 목적 달성보다 조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거나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환언하면, 다른 자동개시 요건과 달리 '사망'이라는 결과와 환자 또는 그 유족이 의료사고라 주장하는 사정과 결합하고 조정신청을 하게 되면, 환자 또는 유족의 조정신청에 따라 무조건 의료분쟁 조정 절차가 개시됨으로써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들도 모두 조정사건의 대상에 포함돼 불합리하게 조정 절차에 참여토록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한병원준법지원인협회는 최근 조정중재원에 의료사고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로 제한해 사건이 자동개시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조정중재원의 답은 거절이었다. "사망과 의료행위와의 인과관계 유무에 대한 판단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조정 절차가 개시된 후 감정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며 "감정 절차를 진행하기 전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심의기구를 구성・운영하는 것은 본격 절차 전에 또 하나의 감정 절차를 두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정중재원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의료인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목적도 있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신속・공정과 달리 조정 성과 달성에 그 역할이 매몰되어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희생은 당연한 과정이라 판단하지 않도록 주지해야 한다.
결국 자동개시 제도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조정이 시작되면 병원은 잘못이 없더라도 조정 절차(합의)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공고해지지 않기 위한 제도 변혁(變革)이 필요하다.
의료분쟁의 공정하고 신속한 해결을 위한 절차를 담고 있는 자동개시 제도가 보건의료기관과 보건의료인에 대한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자기결정권 또는 조정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헌법 제15조 직업 수행(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의료분쟁에 대해 재판상 화해와 같은 강력한 효력이 있다는 강점이 작용할 수 있도록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역할 재정립을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