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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에서 실수와 불운

이양덕
발행날짜: 2020-07-27 05:45:50

이양덕 원장(개원의)

|칼럼|이양덕 원장(대전 이양덕내과)

그리스 신화에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도주한다. 헬레네는 남편과 딸(헤르미오네)을 버린 것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트로이 전쟁을 발발 시킨 그녀의 행동은 항상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헬레네의 애정행각을 옹호한 철학자가 있다.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는 헬레네의 부정이 신의 뜻, 물리적 힘, 언어, 사랑 중 어느 하나에 의해 결정되었다 해도 그녀는 무죄라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신의 뜻, 파리스의 물리적 힘, 파리스의 달콤한 유혹의 언어를 약자인 헬레네가 강자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신의 뜻이라면 이 또한 거부할 수 없으며 만약 인간의 병이라해도 실수로 비난해서는 안 되며 불운이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르기아스의 궤변(詭辯)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It must not be blamed as mistake, but claimed as misfortune'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공동체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한 사람의 실수로 몰고 가면 사회적 분노를 쉽게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불운으로 여겨 방지책을 찾고 시스템의 허점을 정비하는 일은 고단한 과정이겠지만 사회를 더 안전하게 발전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안 좋은 결과에 자신의 실수를 찾아보고 타인의 불운을 고려해 주는 사고방식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믿는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대다수의 국민, 의료진, 방역당국 등이 혼신의 노력을 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찾고 비난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의 불운을 줄이기 위한 점검이 필요하다.

일선 현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불운을 점검하고 보완책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코로나19 검사결과보고

코로나19 검사는 양성일 경우 관계 기관에 즉시 보고된다. 하지만 환자가 경유한 의료기관이나 업소에는 한나절이 지나 통보되기도 하며 또 역학조사는 그 다음날 진행되기도 한다. 환자발생이 많아지면 이 시간은 점점 길어질 수 있다. 코로나에 노출된 의료기관이나 업소가 역학조사 없이 감염병 전파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기관에서 DUR(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이나 카드사용 조회 등을 활용해 14일 내에 방문한 의료기관과 업소에도 바로 정보를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CCTV 등의 자료준비로 빠른 역학조사가 가능하며 보건소의 방역을 기다리기 전에 사업장의 환기, 환자동선에 따라 알코올, 락스 등을 이용한 즉시 자체방역이 가능해진다.

2. 역학조사와 동선공개

역학조사 없이 동선을 먼저 공개해 전파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피해를 본 의료기관과 업소가 많다. 선 역학조사, 후 동선공개가 힘들면 우선 해당업소의 영업정지를 유도하고 반드시 역학조사 후 영업재개나 동선공개를 결정해야한다. 역학조사 후 밀접 접촉자가 없어 비공개로 전환되더라도 코로나19 경유라는 낙인효과를 주어 해당업소 뿐만 아니라 동네상권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차라리 역학조사 전까지 동선공개를 미루고 하루 휴업이 피해가 적고 불필요한 불안을 줄일 수 있다.

3. 환자의 거짓말

역학조사를 거부하거나 거짓 진술한 경우에는 감염법상 형사처벌, 본인치료비 청구, 구상권 행사 등 강력한 조치를 지자체가 취함으로써 확진자 진술에 의한 동선은 시간과 장소가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다. 하지만 진료에서 의료진에게는 직장내의 코로나19 확산, 코로나 검사결과(검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음성이라 하거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음성이라 함), 발열(해열제를 복용) 등의 사실을 감춘다. 진료 중 의료진에게 정확한 정보제공을 하지 않은 경우가 역학조사 시 거짓말보다 더욱 심각한 공공보건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의료기관은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찾는 곳이므로 더 엄중한 감염윤리가 요구되며 감염병 전파 가능성을 은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 감염폭력이다. 진료시의 거짓말은 역학조사시의 거짓말보다 더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

4. 고객(顧客)으로서의 환자

의료는 서비스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서비스업은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운반, 배급, 판매하거나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사회에서는 서비스업은 '고객으로서 극진한 대우나 대접을 요구하거나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개념의 오염(汚染)'이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의료기관의 감염관리지침을 좀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 환자가 간혹 있다. 필자의 경험은 진료실에서 기침하는 환자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창문을 열자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나가다가 보호자까지 진료실에 들어와 욕설을 하고 간 부부도 있었다. 의료기관은 고객으로서 대접을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비용을 지불하고 진료를 받기위해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대기실과 진료실의 공기마저도 기침이나 재채기, 큰소리로 오염시켜서는 안 되는 공유공간'이라는 감염윤리가 팬데믹 시기에 절실하다.

5. 벌보다는 상

코로나19가 전파된 의료기관에 대해 '병원의 방역 조치 미흡에 따른 행정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지 관련 근거를 찾는 등 검토하고 있다'라는 보도는 가뜩이나 움츠러진 의료진의 마음을 억누른다. 하지만 어디에도 '방역단계에서 거르지 못했고 직장에서 코로나19 전파가 발생했음을 감추고 코로나검사를 음성이라고 거짓말 한 환자를 원내전파 없이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한 의료기관에 감사패를 주었다'라는 의료진의 사기를 높이는 기사는 보지 못했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벌보다 상으로 흉흉한 민심을 수습했다. 코로나19의 전파가 일어난 의료기관을 엄중 처벌하는 것보다 전파를 차단한 의료기관에 대한 포상이 의료진의 사기와 정부정책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조선은 의병(義兵)의 활약이 필요했듯이, 코로나19라는 현대판 전란(戰亂)의 시기에 대한민국은 의병(醫兵)의 자발적이고 적극적 동참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대한민국의 의료진, 방역당국, 그리고 국민은 지쳐가고 있다. 또한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겨울이 오면 인플루엔자 유행까지 올 수 있어 대한민국은 1차 진주성 전투를 마치고 8개월 뒤의 2차 전투를 앞둔 진주성 같다. 유성룡은 2차 진주성 전투를 앞두고 '진주성이 위급한데, 포루(砲樓)가 설치되어 있으면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포루(방역체계의 보완)를 설치하고 의병(醫兵)의 사기를 높여 코로나19 팬데믹과 새로운 감염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 믿고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