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명 전출 규모에 "힘들고 지쳤다"며 너도나도 신청 전출 핑계일 뿐 "조직적 문제 때문"이라는 평가도
"보건복지부에 희망이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쳐있는데 칭찬은 커녕 욕만 먹고 있어 질병관리청으로 전출 신청했다"
보건복지부 한 공무원은 세종청사 대신 오송 질병관리본부로 근무지를 신청한 배경을 이 같이 밝혔다. 기자를 향해 다소 격하게 말했지만,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복지부가 9월 12일을 기해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함에 따라 세종청사 본부와 정신병원, 소록도병원, 재활원, 오송센터, 망향의 동산, 분쟁위 및 장기조직혈액관리원 공무원을 대상으로 '질병관리청 전출 희망원 제출'을 신청 받았다.
복지부는 지난 21일까지 양 부처의 유기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해 인사 지원과 인사 교류 차원에서 희망자를 중심으로 전출 신청을 받아 진행 중인 상태이다.
전출 규모는 72명이다. 고공단(일반직 고위공무원) 3명을 비롯해 3급(부이사관)과 4급(서기관) 19명, 5급(사무관) 20명 그리고 6급과 7급(주무관) 15명 및 소속기관 7급과 8급 15명 등이다.
전출 선정기준은 질병관리청이 요구하는 인재생(경력, 전문성, 역량)과 개인 사유(개인 고충과 적성), 향후 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양 기관 균형적 인력 운영 여건(직급, 직렬, 성별, 연령, 입직 경로, 발전 가능성) 등이다.
복지부는 9월 질병관리청 승격 전후 전보 또는 전출 인사를 시작으로 10월과 12월 본부 인력 공석 상황과 질병관리청 충원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 전출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질병관리청 전출을 원하는 복지부 공무원들이 정해진 규모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이 중에서도 비고시 출신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전출서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본부는 현재 840여명 공무원(중수본 인력 확충 이전 기준)이 재직 중이며, 이중 행정고시 출신 200여명(25%), 비고시 출신이 640여명(75%)이다.
전출에 많은 복지부 공무원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질병관리청 업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복지부 조직의 한계성도 한몫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복지부 조직의 문제점은 과도한 수직적 위계질서와 불투명한 폐쇄성 조직, 가족과 부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전근대성 및 개인 차원의 미숙한 분노 조절능력 등이 꼽힌다.
특히 복무제도와 후생복지제도 그리고 승진 및 보직관리, 성과평가제도, 인재개발제도 등 인사 관련 제도가 취지와 달리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상사의 비인간적인 태도와 불명확하고 예측 불가한 업무 지시, 공적 업무 이외 개인 업무 처리 강요 그리고 원하지 않은 보직과 원하지 않은 상관, 근무성적 결과 미공개에 따른 불신, 고시 중심의 연공서열 작용, 심각한 인사적체, 조직 내 사고 발생 시 소극적 대처등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2018년 5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가 발표한 '복지부 복지와 조직문화 심층 분석 결과'라는 특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조직적 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에, 최근 코로나 사태로 공무원들의 자존감을 더욱 떨어졌다는 시각이다.
한 공무원은 "코로나 사태에서 복지부 공무원만큼 열심히 일한 부처는 없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들여오는 소리는 왜 코로나를 못 막느냐, 왜 충분한 손실 보상을 안 하느냐, 기존 업무는 내팽겨 쳤느냐는 욕밖에 없다"면서 "중수본 발령으로 인력도 줄어든 상황에서 복지부 공무원들의 허탈감과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다른 공무원은 "비고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질병관리청 전출이 화제이다. 신청했는데 가능할지, 전출 규모가 얼마나 될지, 친한 공무원들과 같이 가야 승진에 유리하다 등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며 "복지부 전체가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고 있어 전출 신청이 적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비고시와 고시 공무원들 중 질병관리청의 새로운 업무 기대감을 갖고 전출을 신청한 사람도 있다"며 조직변화에 긍정적인 효과도 작용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반면, 질병관리본부에서 복지부 전출 신청은 미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질병관리본부 공무원은 "복지부로 가봤자 고시들 세상인데, 비고시 출신 누가 가려 하겠느냐"면서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면 인력과 조직이 확대되고 당연히 승진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으로 전환되면 역학조사관 증원에 따른 역학조사국을 비롯해 감염병과 질병예방 관련 3~4개 국 신설에 따른 최소 300명 이상의 공무원 충원이 유력한 상황이다.
당연히 국장과 과장, 팀장 등 부서장 보직이 늘어나고, 예산과 인사는 질병관리청장이 담당한다.
전출서를 제출한 복지부 다른 관계자는 "재직 20년 이상된 비고시 출신 상당수가 여전히 사무관에 머물고 있다. 복지부에서 잘해야 4급(서기관)이나 질병관리청으로 가면 정년 전 최소한 3급(부이사관)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복지부 인사과 관계자는 "전출 신청은 마감됐지만 조직개편과 관련 인력 교환 문제는 진행 중에 있다. 복지부 본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몇 명이 신청했는지 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간 인적 교류가 연말까지 진행된다는 점에서 세종청사 이탈 러시는 지속될 전망된다.
한 비고시출신 공무원은 "복지부가 그동안 공무원들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지적하고 "보건복지 분야 업무에서 궂은 일은 비고시 공무원들이 도맡아 해왔다. 비고시 공무원들 신청이 전출 규모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전출로 대거 빠지면 고시 공무원들이 비고시 공무원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