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전임의들이 병원으로 복귀하는 등 의료계 총파업이 수습 국면에 들어서 이번 사태에서 입을 닫았던 대한병원협회의 '역할 부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병협 정영호 회장이 복지부 김강립 차관과의 간담회에서 발언을 두고 병협 임원직을 사임한 사립대병원장들의 여론은 냉담하다.
익명을 요구한 9일 A사립대병원장은 "의료총파업 사태에서 병협 회장의 언행은 덮고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B사립대병원장 또한 "병협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선 사립대병원 입장에선 전공의, 전임의가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병협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커녕 젊은의사들을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게 이들의 지적.
앞서 정영호 회장은 '의대 증원' 필요성을 거듭 주장해온 바 의료계 총파업 국면에서 복지부와의 간담회 중 "의대증원 정책 추진에 감사하다"고 발언, 젊은의사들의 파업에 기름을 부었다는 질타와 함께 사립대병원장 출신의 임원은 줄줄이 사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B대학병원장은 "사립대학병원들은 전공의 파업으로 수십억의 손실을 봤다. 위기의 순간에 병협은 없었다"며 "병협 회장 주재로 대책회의 한번 열지 않았다"고 역할 부재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 전임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적극 나선 것은 병협이 아닌 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 수련병원협의회 등이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병원협회가 이 국면을 어떻게 봉합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A대학병원장은 "봉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상태에서 사립대병원장들이 병협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병협은 내부적으로도 사면초가에 빠졌다. 앞서 사임 의사를 밝힌 사립대병원장들이 병협에서는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터. 이들이 빠지면서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시 병협 상임고문단장직에 김성덕 중앙대의료원장을 비롯해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대의료원장은 부회장직을 내놨다. 또 박종훈 고대안암병원장은 의료협력위원장직을, 유경하 이화의료원장은 재무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특히 사임 의사를 밝힌 김영모 의료원장, 박종훈 병원장 등 사립대병원장들은 평소 병협이 추진하는 사업은 물론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목소리를 내오던 임원이라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이에 대해 병협 한 임원은 "앞서 사립대학병원장들이 불만을 제기하며 보직을 사임한 이후 대책 논의는 없었다. 후속 인사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냉랭한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