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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제재'로 변질? 정신과 비상벨 설치비 해프닝

발행날짜: 2020-09-19 04:30:59

복지부‧지자체, 보건소 통해 75만원 비상벨 설치비 지원방침 전달
일부 개원들, 제재 위한 포석 의심…학회‧의사회 "온전한 지원책" 설득

정부가 법 제정을 통해 방지책을 마련했음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또 다시 환자의 피습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결국 전국 모든 정신의료기관에 비상경보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고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재발 방지책에 '의원급 의료기관'은 빠져 있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선데 정작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정부 정책에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자료사진. 정신질환자로 인한 의사 사망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복지부는 학회와 의사회와 논의해 의원급 의료기관 지원책을 마련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 비상경보장치 설치지원 사업' 추진안을 마련, 각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전달받은 지자체는 보건소를 통해 관할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안내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가 마련한 설치지원 사업의 내용은 이렇다.

총 허가 병상이 100개 미만인 정신의료기관과 정신과 의원은 건강보험 수가 지원대상이 아니므로 설치비용 75만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는 2018년 12월 말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마련한 방지책에 의료계 현장에 적용됐지만, 정작 대상에 '정신과 의원'은 배제돼 있다는 것이 설치지원 사업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고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 이후 제도적 보완책으로 1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에는 보안인력 배치가 의무화되는 동시에 '안전관리료'가 책정돼 수가 지원을 받게 됐지만 정작 의원급 의료기관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 가운데 지난 8월 정신질환자의 피습으로 부산 R정신건강의과 의원 김모 원장이 사망하면서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

따라서 복지부는 100병상 미만의 정신의료기관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대상으로 총 10억원의 예산을 책정, 비상경보장치 설치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예산은 1333개소에 75만원을 지원할 것으로 내다보고 10억원이 책정됐다.

정신의료기관과 의원은 10월 말까지 비상경보장치 설치를 완료하고 설치확인서 및 사진 등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비용 지원이 가능하고 설치에 따른 유지비 월 5500원은 의료기관이 부담해야 한다.

갑작스런 비상벨 설치 지원에 의료계 설왕설래

그런 잇따른 의사 피살사건에 정부가 비상경보장치 설치를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정책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개원가는 시큰둥한 모습이다.

일부 지자체가 관할 정신과 의원에 전달한 설치비 지원계획의 일부분이다.
갑작스러운 지원 소식도 황당하지만 일부 지자체에서 미설치 시 법적으로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논조로 공문을 배포한 데에 따른 불만이다. 또 75만원이라는 지원비용이 오히려 관련 업체들의 담합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의 한 정신과 원장은 "초기비용을 정부가 75만원을 지원해준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로 인해 관련 보안업체들이 금액을 담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며 "차라리 비상벨 설치에 따른 유지비를 지원해주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에 보안업체를 통해 비상벨을 설치한 의원은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라며 "일방적으로 보건소에서 설치하라고 공문을 보내왔는데 사전에 전혀 논의된 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 가운데 복지부와 의원급 의료기관 지원을 논의한 관련 학회와 의사회 측은 개원가들의 불만표출에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온전히 의원급 의료기관을 위한 지원책인데 일부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설치 요구 공문을 보내면서 지원책이 제재로 변질됐다는 설명이다.

정신과의사회 관계자는 "부산 개원의 사망사건 이 후 복지부와 긴급하게 논의한 결과물이다. 현재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에만 지원책이 마련된 상황"이라며 "75만원으로 금액이 정해진 것은 오작동 방지 등을 위해 양방향 통화가 가능한 모델로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일 저렴한 양방향 비상벨이 현재 50~60만원 수준"이라며 "일반 보안업체보다 이번 지원책은 경찰에 바로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으로 온전히 의료기관의 안전을 위한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신경정신의학회 측도 정부의 지원책을 두고서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부 개원가의 우려에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신경정신의학회 임원인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일부 지자체에서 개원의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논조로 공문을 보내면서 지원책이 제재로 오해를 받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복지부가 의원급 의료기관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의사회와 함께 정부에 경찰과 소통이 가능한 비상벨 설치와 특수 순찰지역 지정을 요구한 것으로 일부 지자체에서 강압적으로 나서면서 개원의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양방향 통화가 가능한 비상벨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경찰 측이 요구한 것이다. 오작동이 발생하는 일을 차단하자는 의미"라며 "특수 순찰지역 지정의 경우 '탄력적으로 순찰하는 방안'으로 결정했다"고 개원가의 우려에 대해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