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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도 버리지도 못한다" 애물단지된 수은 혈압계

발행날짜: 2020-11-04 05:45:59

미나마타 협약 미뤄지는 제도 개선으로 의사들 골머리
일부는 의료기기 업체에 처리 떠넘겨 "우리도 골칫거리"

올해 2월로 예정됐던 수은 혈압계 퇴출 기한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폐기물 처리 법안 또한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으면서 체온계와 혈압계가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정부가 수은 폐기물 처리를 위한 법안이 마련될 때까지 폐기를 유예하라고 통보한 상황에서 여전히 하위 법령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있기 때문. 수은 혈압계를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인 셈이다.

수은 혈압계 퇴출을 놓고 여전한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A전문병원 원장은 3일 "지난해 말 이미 수은 혈압계 전부를 전자 혈압계로 교체했다"며 "하지만 여전히 수은 혈압계도 보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일단 폐기하지 말고 지침을 기다리라고 하더니 1년이 다되어 가는데도 아직까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이미 교체는 끝났는데 이걸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미나마타 협약에 따라 올해 2월부터 수은 제품을 함유한 체온계와 혈압계 등의 퇴출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수은 폐기물 처리 방침이 미비한데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료기관들의 요구가 이어지면서 내년 4월로 처벌 시한을 잠정 유예한 상황.

그러면서 정부는 전자 혈압계로 교체하더라도 수은 폐기물 처리에 대한 법안과 하위 법령이 마련될때까지 폐기를 미루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수은 혈압계를 사용하는 의료기관은 당분간 이를 더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교체를 끝낸 의료기관들이다.

정부가 예고한대로 미나마타 협약의 국내 발효일인 2월 20일에 맞춰 전자 혈압계로 교체했지만 수은 혈압계를 처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이유다.

원인은 단순하다. 아직까지 폐기물 처리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는 지난 7월에 수은 폐기물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한 상황이다.

이 개정안은 수은 함유 폐기물, 수은 구성 폐기물, 수은 함유 폐기물 처리 잔재물 등 수은을 사용한 폐기 제품에 관리 방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부적인 처리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환경부는 올해 말까지 시행 규칙을 개정해 미나마타 협약을 이행하는 방안을 담을 계획. 이에 앞서 의료기관과 간담회도 예정했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일부 의료기관들은 의료기기 기업에 폐기물 처리를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일선 의료기관들은 수은 혈압계 처리를 두고 혼선을 빚고 있는 상태다. 아직 법 시행 전이니 과거와 같이 폐기물 업체에 넘기면 되는지 정부의 권고대로 그대로 보관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B대학병원 원장은 "다른 병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냥 폐기했다는 곳도 있긴 하던데 우리는 그대로 창고에 넣어놓은 상황"이라며 "괜히 지침이 나오기 전에 버렸다가 문제가 생길까 노파심이 들어 일단은 보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일부에서는 전자 혈압계로 교체 작업을 진행하면서 의료기기 기업에 수은 혈압계를 그대로 떠넘겨 빈축을 사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아예 구매 조건으로 수은 혈압계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 혈압계를 판매하는 C기업 관계자는 "전자 혈압계 구매를 진행하면서 수은 혈압계를 그대로 다 수거해왔다"며 "아예 구매 조건에 이를 명시하는 의료기관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우리보고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 아니겠냐"며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 조건으로 전자 혈압계 판매 계약을 하고 있으니 회사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