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겸 차의전원 본과 3학년|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올 한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온 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는 바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신종 감염병의 출현으로 각종 산업은 힘들어지고 가게의 상점들마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재정지원금 정책을 확대하는 등 많은 문제점과 이에 따른 대책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이런 사태가 반복되었을 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면 여러 부문에 있어서 우수하다고 생각을 한다. 국방에서부터 경제, 문화까지 아울러 우수한 국가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불리곤 한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선진국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이탈리아(GDP 세계 8위)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선진국이라 하기에는 많은 물음표를 남겼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한 이탈리아의 문제를 의료 붕괴로 보고, 그 이면의 원인으로 시스템 문제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사/의대생 총파업 사태와 관련 있었던 공공의료와 이탈리아 사태는 멀리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현재 우리나라 일각에서 주장하는 '무상공공의료+사설의료체계'를 실천하고 있는 국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일반적인 사인(私人) 취급을 받는 반면에 이탈리아는 공인(公人)으로 취급 받는다.
이번 총파업 사태에서도 의사는 공공재다라는 말이 많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탈리아 또한 물질, 재화를 뜻하는 "공공재"는 당연 아니지만 "의사=공인" 이라는 점에서 공공성을 매우 강하게 부여하는, 그런 성격을 띈 공공의료체계가 그 나라의 의료시스템이다.
얼핏 들었을 때 좋아 보이는 무상이라는 단어와 공공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이탈리아의 의료는 그 두 가지 단어 때문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첫번째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처럼 이탈리아에서 의사의 수와 급여 또한 나라의 예산에 따라 결정이 된다. 따라서 집권 정치인들의 성향에 따라 보건 예산이 정해지게 되고 그에 따라 의사 수와 의사 급여, 의료 기자재 등 의료 퀄리티가 달라진다. 문제는 보건 예산이 많이 배정되면 의료 시스템이 좋아질 여지가 있지만 사정에 따라 보건 예산이 대폭 감축될 경우 보건 시스템의 퀄리티가 저하되는 문제점을 노출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탈리아의 공공보건 예산은 10여년 전 이탈리아 1인 당 2008년 3490 달러에서 2016년 2739 달러로 대폭 감소하였다.
두번째로, 의사의 급여가 보건예산으로 인해 결정이 되는 만큼 그 급여가 결코 높지 않다. 이웃 국가들 중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의 평균 연봉이 이탈리아보다 높다. 이럴 경우 이탈리아 의사들은 같은 의사이고 같은 의학 교육과 수련을 받았음에도 단지 몇 km 차이가 나는 곳에 산다는 차이 때문에 다른 급여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남유럽 일부 국가나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그리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등) 의사들의 엑소더스(집단탈출)가 심하다. 즉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의사로서 같은 의료행위를 하고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이번 이탈리아 사태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의료시스템의 붕괴 그리고 그 이면엔 이런 많은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꼬집는다.
사실 이번 파업사태에서 많은 의사집단들이 공공의료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현 의료계에 있는 문제점들이 시간이 갈수록 심화 되어져 가고 있음에도 그 문제점들의 해결은 외면시 한 채 문제의 고착화, 심각성의 심화를 불러일으키는 정책을 무턱대고 추진했다는 점에서 반대를 하는 것이 요지이다.
의료 자체가 전세계적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는 영역에 가둬두지 않는 이상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당연히 의사는 자신의 고충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곳으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의사의 의료 행위가 봉사의 가치를 지향함은 옳으나 직업 자체를 봉사로 규정할 순 없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 소요된 시간과 돈을 생각해보면, 무조건 지방으로, 적은 급여로, 나라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대로 묵묵히 다 수긍하고 따르기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너무나도 불공평한 처사이지 않는가.
최근 필자 주변에만 하더라도 해외 의사 시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실제로 일본국가의사시험(JMLE) 준비 카페는 최근 1000명이 넘는 인원이 가입을 했다. 사실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방향으로 의료체계가 개선됨에 있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의료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자 하는 사람 또한 없다. 하지만 그 시스템의 바퀴 역할을 하는 의료인을 보호하거나 고려하지 않고는 2020년 K-방역은 재현되기 힘들 것이며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보던 의사들의 집단 탈출 또한 더 이상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게 될 수 있다.
모두가 상생하는 의료체계를 고려해야 한다. 한쪽을 높이고 한쪽을 낮추는 양팔저울 식 정책은 결코 미래지향적이지 않으며 발전적인 정책이 아니다. 또한 비의료계에 속하는 국민과 의료계는 결코 양팔저울의 척도에서 반대편에 서있지 않다. 같이 손을 잡고 질병과 싸우며 건강한 대한민국을 구축하는 일종의 동료이다. 더불어 의사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아프면 일반 환자가 되는 사람이다.
비의료인인 국민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의료인에 입장에서도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 환자를 돌보다 죽은 정신과 의사 사건들이나 환자에게 결핵을 옮는 의사들, 각종 전염성 질환 등에 감염되는 의사들은 오늘 날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 또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 절대 끄떡없는 신적인 존재가 아닌 같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앞으로는 의료계에 남은 모든 숙제를 그러한 관점을 견지한 채로 슬기롭게 같이 풀어보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