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남, 50대)는 몇 년전 호흡곤란,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정확한 병명을 몰라 수년간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며 다양한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발끝 신경까지 저릿한 느낌이 들어 심장 관련 검사를 받아야 했고 어느 날 갑자기 '유전성 트랜스티레틴아밀로이드 심근병증(Transthyretin Amyloid Cardiomyopathy, 이하 ATTR-CM)'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질환을 마주하게 됐다.
통상 정상형(wild-type) 또는 유전성(hereditary)으로 구분되는 ATTR-CM은, 환자 수가 매우 적어 국내 유병률조차 파악되지 않은 초희귀질환으로 꼽힌다. 현재까지 약 120종류 이상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알려졌으며,이 중 일부 유전 형태는 특정 지역의 풍토병 성격을 띄는 것으로도 보고된다.
정작 문제는, 증상이 흔해서 다른 질환으로 오진될 가능성도 높다는 대목이다.
ATTR-CM의 주요 증상들을 살펴보면 울혈성 심부전을 비롯한 부종, 호흡곤란, 부종, 피로 등 다양하다. 이러한 이유로 제한성 심근증, 심부전, 또는 부정맥을 일으키거나, 심박출량 보존 심부전(HFpEF) 환자 등으로 오진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지금껏 학계 조사에 따르면, ATTR-CM은 혈액 내에서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운반 단백질인 트랜스티레틴(TTR)이 불안정해지며 잘못 접힌 단위체로 분리돼 심장에 쌓여 제한성 심근증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진행성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더욱이 이들 환자들은 아밀로이드의 축적으로 인해 급속도로 예후가 악화될 수 있으며, 실제 진단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생존기간은 약 2~3.5년에 불과해 문제가 심각한 것.
이처럼 오진 비율이 높아 진단이 지연되고 다양한 종류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보고되는 만큼, 전문가들은 "ATTR-CM은 환자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치료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조기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나선 상황이다.
ATTR-CM 치료 "심부전 및 부정맥 관리, 치료제 사용"…"초기 투약이 관건"
이렇다할 치료제조차 없던 ATTR-CM 분야에도 지난 8월부터는 치료의 길이 열렸다.
'빈다맥스(타파미디스)'가 ATTR-CM 성인 환자의 심혈관계 사망률 및 심혈관계 관련 입원의 감소에 대한 적응증으로 국내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해당 질환에 대한 치료제로는 국내에서 처음이자 유일했다.
이와 관련, 미국심장협회(AHA)에서 권고하는 ATTR-CM의 치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심부전 관리, 부정맥 관리 그리고 치료제의 사용이다.
이번 허가 이전에는 장기 부전으로 인한 증상을 관리하며 질병 진행을 늦추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심부전 'D병기'에 해당하거나 신경병증 발생의 위험이 있는 일부 ATTR-CM 환자들은 심장 또는 간 이식을 고려할 수도 있었지만, 이는 환자의 나이와 기증 장기의 부족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매우 제한적으로 시행됐던 상황.
결과적으로 빈다맥스가 처방권에 진입하면서 직접적으로 심혈관계 사망 및 심혈관계 관련 입원 위험 감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가 마련된 셈이다.
해외 허가사항을 살펴보면, 미국FDA의 경우 정상형 또는 유전성 ATTR-CM 환자 중에서도 뉴욕심장협회(NYHA) 심기능 등급 I~III에 해당하는 환자에 유의미한 치료효과를 인정했다. 특히, 질환 초기에 빈다맥스를 복용할 경우 질병 진행을 늦추는데 도움을 준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유럽의약품청(EMA)에서 발표한 타파미디스의 제품특성요약(SmPC, Summary of Product Characteristics)에서도 "ATTR-CM 질병 진행에 대해 더욱 확실한 임상적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빠르게 타파미디스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됐다.
국내 오진비율 높아 진단 지연…학계 "진단 및 치료 시급한 중증 질환"
해당 허가는 441명의 ATTR-CM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다기관 위약대조 3상임상인 'ATTR-ACT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연구에서 441명의 환자들은 2:1:2의 비율로 타파미디스80mg, 타파미디스20mg, 위약 투여군에 각각 무작위 배정됐다. 이때 연구의 1차 평가변수로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과 심혈관 관련 입원 빈도를 계층적으로 평가했다.
또 연구의 주요 2차 평가변수는 기저시점 대비 30개월 시점까지의 6분 보행검사(6-minute walk test)와 점수가 높을수록 더 나은 건강 상태를 의미하는 '캔자스 대학 심근병증 설문지(KCCQ-OS)' 점수의 변화였다.
주요 결과를 보면, 타파미디스 투여군(264명)은 위약군(177명) 대비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이 각각 29.5%, 42.9%로 더 낮았으며 심혈관 관련 입원 위험률 역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더 낮았다.
더불어 연구 30개월 시점에서 환자의 기능적 운동능력을 측정하는 6분 보행검사 및 환자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캔자스 대학 심근병증 설문지 점수의 감소폭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심부전학회 회장인 분당서울대병원 심장내과 최동주 교수는 "ATTR-CM은 오진비율이 높아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ATTR-CM 환자의 생존기간은 확진 후 최소 2~3.5년으로 매우 짧아 조기진단과 적극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국내 ATTR-CM의 유병 현황에 대한 연구 및 조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인데, 전문 의료진과 환자들이 ATTR-CM을 의심하고 또 면밀한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더 높아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다행히 국내에는 빈다맥스라는 효과적인 치료제가 허가돼 있다. 환자들이 빠르게 진단만 받을 수 있다면 예후를 더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국내 ATTR-CM 환자들의 부담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진단과 치료가 모두 시급한 질환인 만큼 치료 접근성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유일 치료옵션으로 평가받는 빈다맥스의 국내 급여상황은, 정부 등 여러 단체가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자수가 적고 치료제 개발이 더뎌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가치를 적절하게 반영해 평가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급여제도 개선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