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기준 코로나19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가 600명대로 급증하면서 대유행의 전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확진자 수가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기준 2.5단계에 부합하지만 여전히 보건당국은 단계 상향에 신중론을 펼치는 상황. 이에 감염학회, 결핵및호흡기학회, 소아감염학회, 예방의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강력한 방역 조치를 주문하고 나섰다.
바이러스 활동이 증가하는 겨울철에 적절한 방역 지침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전문가가 바라본 정부의 방역 조치 평가는 어떨까. 최원석 대한감염학회 신종감염병위원회 미디어소통위원장(고대안산병원 감염내과)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대한감염학회르 포함한 11개 학회가 방역 강화를 주문하는 성명서를 냈다. 주요 내용은?
두 가지를 주문했다. 방역 조치는 조기에 선제적으로 강력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학계·전문가와 보다 긴밀한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 이전과 같은 수준의 억제력을 가지려면 더 강한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 거리두기 단계 상향을 포함해 방역 조치는 조기에 강력하게 적용돼야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조치가 늦어지면 실제 유행의 규모를 줄이는 효과는 미미하고 부가적인 피해만 커지게 된다.
또 방역과 관련된 정책 결정에 있어서 정확한 상황 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방역 현장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지난 8월에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두 상황의 차이는?
당시엔 300명 대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던 시점이었다. 최근은 더 위중한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바이러스 활동이 증가하는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전파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한국역학회에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코로나19의 일일 감염재생산지수는 1.5를 넘어서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보여주는 연속 감염 기간 연쇄간격(serial interval) 역시 평균 4일에서 4.7일로 증가했다. 적절한 조치없이 이런 상황이 계속 진행되면 일일 신규 환진자는 1000명이 넘어간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여러 학회들이 의견을 냈다. 지금 학회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 판단했다. 감염학회 미디어소통위원들과 의견을 모아서 초안을 작성하고 여러 학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수정했다. 8월에도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했고, 이번에도 그렇다.
▲정부의 방역 정책이 원칙보다는 다소 임기응변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 2단계+α 정책이 대표적인데 기준을 충족해도 단계 상향에 미온적이다. 현재 수준에 적합한 방역 단계는?
지난 8월에도 3단계 조치로 구분돼 때도 정부는 1.5단계 비슷하게 조치했다가 결국 2단계로 올렸다. 지금도 방역 조치 상향에 주저주저하는 편이다. 2.5 단계라는 애매한 단계를 마련했는데 그것마저도 적용 여부에 고심을 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역에 대한 고민 끝에 조금 헐거운 단계를 만들어냈는데도 정부 스스로 기준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경제 침체와 같은 정부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응할 수 있는 현재 수준으론 부족하다. 이번에 발표한 성명서에선 단계를 지정하지 않았다. 단계 상향에 대한 전문 학회들, 의료진들간 컨센선스가 필요한데 확실한 건 지금 단계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낮은 단계로 장기간 유지했을 때와 3단계 등 강력한 조치를 단기간 적용했을 때의 사회적 비용 차이는?
강력한 조치가 있으면 확진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팩트다. 다만 낮은 단계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과 강력한 단계를 짧고 굵게 적용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비용 효과적인지는 아직 학술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다. 전체적인 피해가 최소화되는 걸 찾는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건 후향적으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원칙은 있다. 현재의 대응 수준이 의료가 감당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외국도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봉쇄 수준의 락다운(lockdown)을 선택하는 기준은 의료체계 지속 가능성 여부다. 해외에서는 너무 많은 확진자가 발생해서 기존과 다른 의료체계가 적용되고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운용가능한 병상, 의료자원의 캐파는 무한대로 늘릴 수 없다.
일일 감염자가 1000명에 육박할 경우 입원실 등 국내 보건의료체계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1000명은 상징적 의미다. 대구, 경북에서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가 800~900명 정도였다. 900명은 괜찮고 1000명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500명대 후반만 계속돼도 현재 의료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또 가용 가능한 의료자원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중환자실을 코로나19 환자용으로 만드려면 동선을 분리하고 가벽을 만들고, 환기 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코로나19 전용 1인실을 만드려면 일반 중환자실 4~5명 분을 할애해야 한다. 코로나 환자와 일반 중환자의 목숨을 등가 교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정책이 더 큰 손해를 가져오는지, 그런 손해를 감내할 수 있는지 사회적인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의 방역 조치에 대한 제언은?
절체절명의 현 시점에서 방심하다간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친다. 3단계로 가면 모두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은 낙관론에 불과하다. 단계를 올려도 환자 수가 줄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눈앞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방역에 소홀하다가는 확진자 급증에 따르는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더 발생할 수 있다.
만일 1000명씩 확진자가 나온다면 3단계로도 역부족일 수 있다. 외국의 락다운 기준이 우리나라의 3단계 기준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은 통행까지 막을 정도로 강력하지만 급증 추세를 막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시 방심하면 언제든 급증할 수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3단계를 적용해도 확진자 수 증가세가 누그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3단계 적용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단계보다는 상향이 필요하다.
또 정부의 일관된 메세지 전달이 중요하다. 8월에도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쿠폰을 뿌려댔다. 쿠폰이 밀접접촉을 늘리는 등 악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다. 방역 기준을 만들고 그에 맞는 확진자가 나왔으면 기준대로 방침을 적용해야 한다. 정부는 그런 원칙을 어기면서 국민에게는 방역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하는 건 모순이자 신뢰감 상실의 원인이 된다.
▲이번에도 학계·전문가와 보다 긴밀한 논의 구조를 요청했다. 여전히 학계와 보건당국간 논의가 원활하지 않은지?
자문위원회 및 생활방역위원회에 각 학계 전문가들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자문에 그친다. 타 학회와 같이 비슷한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전문가들이 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가 확립됐으면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위원회와 자문단을 다 아우르면서 정책 결정을 내리는 민간협의체가 있었으면 한다. 이런 협의체를 통해서 보건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의사 결정의 주체는 정부이고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선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