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으로부터 신년 축하 메세지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 코로나19 관련 화이자 백신을 확보했다는 내용의 메세지를 열어보니 하얀 고무신(白+신)에 화이자 기업 로고가 새겨진 합성사진이었다. 마냥 웃지 못했던 건 이런 사진이 농담꺼리로 나돌만큼 국내의 백신 확보가 뒤쳐졌다는 게 내심 유쾌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이 백신 접종에 들어가면서 백신 확보에 뒤쳐진 국내 방역을 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 확산 소식에 영국이 해외 입국자를 막는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국내에선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12월부터 일일 확진자 1천명 안팎으로 급증하자 K-방역은 'Kill-방역'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국내 방역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 새해엔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가장 큰 고민은 방역 지침에 대한 신뢰감 하락이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쿠폰을 발행하며 접촉을 유도한 것은 물론 당초 정한 방역 기준을 정부 스스로 번복했다. 의학 학술단체들이 촉구한 조속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상향에 주저한 것 역시 실책을 불러왔다. 원칙 대신 누더기 같은 핀셋 방역이니, 2.5단계+알파와 같은 해괴한 지침들이 시행됐지만 어떤 설명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근거없는 주먹구구식 행정 역시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왜 5인 이상 집합 금지인지, 왜 9시 이후 주요 시설이 문을 닫아야 하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 출근길 지하철의 콩나물 시루같은 밀접접촉은 눈감으면서 5인 이상 집합은 왜 금지되는지, 왜 4인이 아니라 5인인지 그 어떤 과학적인 근거를 들을 수 없다. 5인부터 감염재생산지수가 급격하게 상승했다거나, 9시 이후 감염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이 도출됐다는 등의 근거 제시는 국민 설득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집합금지 대상 시설에 대한 기준 및 형평성도 애매하긴 마찬가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연장되면서 태권도, 발레와 같은 실내체육은 허용하면서도 헬스장은 여전히 집합금지 대상이다. 이쯤되면 행정에 근거나 원칙은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마련이다.
3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억제되며 완만하게 지나가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정책은 실패할 수도 있다.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모든 정책이 성공하는 건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 실패와 이에 따른 대응이 적절했는가는 오롯이 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부적절한 대응이 방역 지침의 신뢰감 저하로 이어지지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K-방역이 국제표준이 될지 Kill-방역이라는 오명으로 끝날지는 정부 대응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