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의대 의예과 2학년 최시연| 전에 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작중 소아외과 의사의 앞에, 복통을 호소하는 한 어린 환자가 등장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동생과 장난을 치다가 식탁에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다행히도 생명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서, 엑스레이 촬영은 차분하게 이루어진다. 촬영 후 나온 소견은 갈비뼈 골절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에피소드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굳은 표정으로 엑스레이 사진을 내려다보던 의사는 말한다. 갈비뼈 골절은, 낙상으로는 쉽게 나타나지 않으며 아동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징후라고. 의사의 빠른 신고 덕에 곧이어 도착한 경찰은 부모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고, 부모는 지나친 훈계 또한 학대임을 반성하며 아이에게 미안함의 눈물을 흘린다. 예과 1학년이던 나는, 이런 케이스가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임에 충격을 받았고 내가 배움을 통해 지나치지 않고 반드시 알아차려야만 할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10월, 정인이라는 생후 16개월의 아이가 응급실에서 사망한 사건이 화제가 되었다.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으로 양부모의 폭행에 의한 사망이었다. 보도자료를 통해 접한 아이의 사망 직전 엑스레이 사진은, 아동 학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말하듯 한 눈에 파악하기도 어려운 부상들로 가득했다.
아이의 골절된 후두부, 쇄골, 대퇴골에서는 적어도 10군데 가량의 골절 유합 흔적이 발견되었다. 복강 전체는 이미 피로 가득했고, 외력에 의해 장간막, 소장과 대장이 파열되었으며 췌장이 절단되어 있었다. 그 작은 몸 안에 어떻게 이런 부상이 모두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그 작은 생명은 스러졌을 것이었다. 이런 참혹함을 목격하고 난 후, 아이를 살려달라며 오열하는 양부모들을 본 응급실 의사들의 심경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후 조사를 통해 정인이는 적어도 8개월 가량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학대에 시달려왔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아동학대 신고가 각각 다른 시점, 다른 사람에 의해 3번이나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사망할 대까지 학대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첫 신고는 오로지 양부모의 입장만 듣고 내사종결되었으며, 심지어 세 번째 신고는 진료를 본 소아과 의사가 강력하게 학대 소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이 사건은 수많은 국민들의 공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범을 중형에 처해 달라는 청원과 진정서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무력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이 아무리 큰 벌을 받아도 16개월의 어린 정인이는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다. 온몸으로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을 정인이의 고통을 알아보지 못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었고, 그것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 드라마에서 접한 아동학대는 책임소재가 분명했으며 신고를 통해 개선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매체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고, 참혹했다. 경찰에 한 세 번의 신고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참혹한 부검 결과조차 학대의 증거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픽션에 많은 것을 투영한다. 그것은 때때로 희망을 전하기 위한 메시지가 되기도 하고, 잘못된 것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런 픽션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질 때, 가끔 나는 멍해지고 무력해졌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것은, 또 다른 정인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였다.
이 세상에는 분명히 아직 우리가 알아보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또다른 정인이가 있다.
#정인아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