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리피오돌과 발사르탄 사태 명분 약가 협상 칼자루 쥐어 합의서에 발목 잡힌 제약사…불만 있어도 정보유출 책임에 속앓이
|기획|제네릭 정책 대변화, 부담 커진 국내 제약사들
복제의약품(제네릭) 생산을 위주로 한 국내 제약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1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라 약가협상을 위주로 한 정책을 최근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건보공단의 제네릭 약가협상 과정을 짚어보고, 당사자인 제약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상> 제네릭 협상 '요양급여 합의서' 들춰보다
사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제네릭(복제의약품) 약제(가) 협상을 두고 칼자루를 쥔 건강보험공단의 무리한 요구로 제약사들의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특히 이러한 요구와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싶어도 비공개를 전제로 하는 합의문으로 인해 정보 유출 책임을 물을까 우려하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모습도 관측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0월 약가 협상에 대한 지침을 개정하고 같은 해 12월부터 제네릭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첫 제네릭 협상이다.
그동안 제네릭은 오리지널 신약과 다르게 품목 허가를 받은 뒤 보험 급여에 등재되면 별도 협상 없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산정 방식을 통해 약가가 결정됐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제는 심평원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면 건보공단과 제네릭 별로 협상을 거쳐 보험급여 약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재편됐다.
이를 위해 건보공단은 올해부터 이를 전담하는 부서인 '약가관리실'을 신설하는가 하면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되는 '요양급여 합의서'를 제네릭 생산 제약사에게 요구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 제네릭 협상 제도가 본격 시행된 지 100일이 채 지나지도 않아 무리한 요구로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정적 공급‧품질관리' 삼아 탄생한 제네릭 협상
실제로 건보공단의 제네릭 협상은 건강보험법 하위법령인 '건강보험 요양급여 규칙'을 근거로 한다.
제11조2의 7항과 8항에 따라 '약제의 안정적인 공급 및 품질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근거로 해 건보공단이 신약뿐만 아니라 제네릭까지 약가 협상 범위에 포함시킨 것.
즉 신약뿐만 아니라 제네릭도 '안정적 공급'과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협상의 대상이 된 셈이다.
이러한 제네릭 협상제의 도입은 간암 치료용 조영제 '리피오돌'과 인공혈관 '고어텍스' 공급중단 사태 등이 계기가 됐다.
협상을 통해 신약 뿐만 아니라 제네릭까지도 리피오돌과 고어텍스와 같은 공급중단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합의를 진행해 문제가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포석이다.
또한 중국 수입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탄' 성분 원료의약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발암추정물질이 발견되면서 '품질관리'를 위해서라도 제네릭도 협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심평원 '약제관리실'에 비견될만한 '약가관리실'을 별도로 신설하고 제네릭 협상을 전담하는 '제네릭 협상 관리부'를 새롭게 꾸려 운영 중이다. 2019년 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보고된 제네릭 의약품을 고려했을 때 월 평균 322품목에 대한 협상을 벌여야 할 것으로 건보공단은 예상하고 있다.
결국 의료행위와 약제관리에는 역할이 없던 건보공단이 지난해 급여전략실 신설에 이어 올해 약가관리실까지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의약제도' 관리 업무에까지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연달아 의약품을 둘러싼 공급중단 혹은 발암 추정 물질 사태에 발생함에 따라 건보공단이 이슈를 선점, 발빠르게 제도화해 역할을 부여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제네릭 약가협상은 급여 약제의 안정적인 공급과 품질관리로 환자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보험자로서 약제급여목록에 등재 전 '묻지마 등재'를 사전에 방지하고 공급 및 품질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협상(합의)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비공개' 제네릭 협상…제약사 합의서엔 무엇이?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약가 협상 지침을 바꾼 건보공단은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제네릭을 생산 중인 제약사와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건보공단이 벌이고 있는 제네릭 협상의 핵심은 안정적 공급과 품질관리 의무와 함께 '비밀유지'가 꼽힌다.
이 가운데 건보공단은 제약사와 약가협상과 관련한 별도의 표준계약서라고 할 수 있는 '요양급여 합의서' 등은 철저히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보험 규칙 상 '별표 서식'을 통해 약제평가신청서, 치료재료 평가신청서 등 표준서식이 규격화 돼 공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
하지만 협상에 활용되는 요양급여 합의서 등은 보험자와 제약사 간의 '협상'을 이유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더구나 건보공단 자체로 운영 중인 약가 협상 지침에 '비밀유지' 조항도 명문화되면서 제네릭 협상을 벌이는 제약사들은 서로 관련 내용을 공유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건보공단이 철저하게 비공개로 유지 중인 제네릭 협상에 따른 제약사별 계약서, 즉 합의서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긴 것일까.
메디칼타임즈가 제약업계를 바탕으로 취재한 것을 종합해 보면, 조건부 합의와 약제 공급의무, 공급 부족 시 환자 추가 부담액 보상, 의약품 재평가 등을 위한 임상시험 통지의무 및 조치사항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약가 협상 지침에 더해 제네릭 협상에서의 과정과 정보, 논의 사항을 '비밀유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제네릭 협상의 핵심인 '약제 공급의무'다. 제약사는 제네릭 협상에 합의할 경우 원활한 공급에 더해 요양기관과 유통업체의 정당한 공급 요청 등을 거절할 수 없게 된다.
특히 건보공단은 원활한 공급의무 이행을 확인하기 위해 제약사에 매 월별 생산량, 수입량 등을 보고토록 하는 한편, 제약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제출 등을 지연할 경우 일정금액의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을 합의서에 포함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합의서 상에 공급 의무를 부여함은 물론 보고 지연 시 제약사에게 일종의 과태료 형태로 부담을 지운 것이다.
가령, 협상에 합의한 제약사가 이유 없이 보고를 하지 않을 경우 백만원을 건보공단에 내야할뿐더러 지연기간이 초과될 경우 1개월 수마다 백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네릭 협상을 한 뒤 합의서에 서명하면 매달 혹은 분기별로 특이사항이 없어도 공급내역을 건보공단에 보고해야 한다"며 "특이사항이 없어도 '없다'고 보고를 하라는 것이다. 합의서에 서명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보고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동시에 합의서 상에 포함된 '비밀유지' 조항도 제약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약가협상지침과 마찬가지로 제약사는 협상 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합의서에 명문화 된 것으로 '깜깜이 협상'이라는 비판의 계기가 된 대목이기도 하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협상 과정 상에서의 내용을 그 누구에게도 공유해선 안된다는 것인 만큼 설사 불만이 있어도 이를 제기했다간 자칫 계약 위반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로 건보공단은 협상대상 약제의 보험급여를 위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및 고시 절차를 위한 경우는 '비밀유지' 조항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단서로 달았다. 오직 제네릭 약가 협상과 관련한 정보는 복지부나 건정심 업무보고 시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만약 제네릭 협상 내용이 누설될 경우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약제의 등재시기 조정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제약사는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사실 이 같은 제네릭 협상은 요양급여 규칙에 따라 진행될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로 해야 한다"며 "가장 큰 문제는 제약사가 제도의 문제점을 말하고 싶어도 비밀유지 조항으로 인해 밝힐 수도 없다. '협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