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전공의들 말 뿐인 '자발적' 파견 우려 목소리 "심각한 상황인데 대전협 대응 안이하다" 불만 토로
코로나19 대유행 등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타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자발적 파견이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일선 전공의들은 부실 수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서 전공의 겸직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긴급하게 의료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기관에 근무하는 경우 겸직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단, 전공의 파견은 전공의가 동의, 수련병원장의 허가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서울 빅5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A전공의는 "전공의는 병원에서 실제로 환자를 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수련을 받는 위치에 있다"라며 "수련 기간 중 전문적인 실력을 습득하는 단계인데 관련 없는 업무를 하게 되면 수련 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 재난상황에서 참여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의사가 13만명이고, 전공의는 1만5000명 미만으로 수련 받는 존재다. 이들을 병원장 재량으로 투입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아무리 자발적이라고 해도 병원장이나 교수가 겸직을 요구하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지방 사립대병원 B전공의도 "수련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점은 자명한데 보호장치가 하나도 없다"라며 "자발적이니까 큰 문제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선의의 의도가 꼭 선의의 결과만 불러오는 게 아니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계와 합의한 게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비판했다.
경기도 한 대학병원 C전공의는 전공의 겸직 금지 해제법을 두고 지난해 여름 있었던 전공의 총파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는 "지난해 전공의 파업이 발생했을 때 국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라며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전공의에 대해 다른 의료기관에서 근무를 명할 수 있게 됐다. 파업 가능성을 봉쇄하는 법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공의들의 불안감은 전공의 집단을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로 향했다.
대전협은 해당 법안에 대해 '자발적' 파견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상황. 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대전협으로 관련 법에 대한 일선 전공의의 문의가 이어졌다.
이에 대전협은 전공의의 자발적 동의와 수련기관의 병원장 허가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법률 자문을 거쳐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공유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같은 내용으로 복지부에 의견을 제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방역에 전공의 차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발표한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 대전협은 성명서를 통해 "전공의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이미 마른 수건 짜듯 일하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라며 "정부가 아무때나 부른다고 달려갈 수 있는 노예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전공의 내부의 입장이 미묘하게 달라지자 한림대 전공의들은 대전협 의견을 공식적으로 물었다.
B전공의는 "정부나 병원장의 위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대응 등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며 "정부 태도가 주먹 들고 나오는데 현재 대전협은 가만히 맞을 생각으로만 있는 것 같다. 안이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꼬집었다.
서울 한 대학병원 D 전공의도 "전공의 입장에서는 공공의대 예산안 통과를 뛰어넘는 상황인 것 같다"라며 "성명서를 낸 것도 아니고, 이후에 성명서를 발표하더라도 대전협이 적절히 대처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전공의가 전국적으로 차출되는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