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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 떠났다”...원광대 외상전문의 7명 줄사표

이창진
발행날짜: 2021-03-15 05:45:59

의사들 “수익 압박·외상 외 수술 등 갈등있었다”…병원측은 전면 부인
전북 외상체계 공백 우려…복지부 "외상실적 등 면밀 점검할 것" 예고

전북 지역 외상환자를 전담하는 원광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전담 의사들이 대거 사직해 지역 외상체계 공백이 예상된다.

서류심사에 의존한 보건당국의 권역외상센터 관리체계에 큰 허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실태조사와 재발 방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4일 메디칼타임즈 취재결과, 2020년 한 해 동안 원광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속 외상전담전문의 7명이 연이어 사직서를 제출하고 원광대병원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원광대병원 외상센터 외상전담의사 7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 사진은 원광대병원 외상센터 홈페이지 초기 화면.
앞서 원광대병원(병원장 윤권하)은 2015년 11월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 지정 이후 2019년 10월 전북 지역 유일의 권역외상센터를 정식 개소했다.

외상센터별 외상의사의 사직과 채용은 일반화 된지 오래이다.

■지난해 원광대병원 외상센터 핵심 전담의 8명 중 7명 ‘사직’

의료계가 원광대병원 사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사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광대병원 외상센터를 경험한 복수의 외상의사를 취재한 결과, 외상센터를 향한 경영진의 고강도 압박 그리고 외상 분야가 아닌 타 진료과 수술 참여 등에 따른 내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원광대병원 사태의 출발점은 2018년 12월 윤권하 병원장(영상의학과 교수) 취임 이후 시작됐다.

전임 원장 재임 시 외상센터 천장 배선공사가 계약서 없이 원장 친인척 회사에 임의로 시행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후 병원장이 외상센터 구입 장비와 물품, 모든 공사를 직접 총괄하며 센터장을 겸직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외상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경영진의 압박은 가중됐다.

원광대병원은 2019년 전북 지역 복지부 지정 외상센터를 개소했다. 사진은 원광대병원 홈페이지 외상센터 전경.
돈도 못 버는 외상센터라는 주홍글씨가 병원 내에서 공공연히 회자되며 외상의사들의 괴로움은 커져갔다.

연이은 사직서의 단초는 외상센터 의사들의 내부 갈등에서 비롯됐다.

경영 압박에 시달린 일부 외상의사들이 타 진료과 수술 등에 암암리에 참여하면서 외상센터 내부에서 불만이 폭발했다.

■병원 경영진 압박과 타 진료 수술 등 참여…내부 갈등 ‘폭발’

복지부 권역외상센터 운영 지침에는 365일, 24시간 외상환자 외 다른 진료 업무를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외상센터 전담전문의 인건비 지원 예산 환수 조치 및 보조금 중단 등의 패널티가 부과된다.

복지부 지침을 의식해 외상 전담전문의들이 타 진료과 수술과 진료에 참여한 수술기록과 진료기록은 남기지 않았다.

원광대병원 외상센터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 외상 의사들은 지난해 3월부터 하나, 둘 사직서를 제출했다. 외상센터 개소 당시 원년 멤버 외상전담전문의 8명 중 7명이 줄지어 병원을 떠났다.

사직서를 제출한 7명은 다른 지역 외상센터와 봉직의 등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광대병원 외상의사 일부는 외상 외 수술과 진료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원광대병원 외상센터 홈페이지 중환자실 모습.
외상센터장도 초대 센터장에서 병원장, 응급의학과 교수에서 다시 초대 센터장으로 인사를 반복했다.

원광대병원 전직 외상의사는 "외상센터는 오롯이 외상환자만 전담하는 본연의 역할이 있다. 복지부의 외상전담의 인건비 지원 예산은 눈먼 돈이 아니다"라면서 "병원 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외상의사들을 폄하하는 언행과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에 많은 의사들이 자괴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외상의사들의 사직을 병원 내부 문제로 볼 수 있겠지만, 외상센터라면 최소한 지역 외상환자 치료에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외상의사는 “외상센터는 의사 1~2명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전북 지역 외상체계를 전담하던 큰 숲에서 나무로 남았다는 소외감과 좌절감이 의사들 사직에 크게 작용했다”고 토로했다.

■외상의사들, 원광대병원 사태 인지 “경영진 외상센터 운영 의지 없어”

원광대병원 사태는 외상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져 나갔다.

A 대학병원 외상센터 교수는 "원광대병원 경영진의 외상센터 운영 의지가 없어 보인다. 복지부 예산 지원을 받아 시설장비와 인건비에 사용하면서 병원 경영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에 어느 외상의사가 남아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B 대학병원 외상센터 교수는 "병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외상의사들이 눈치만 보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 "원광대병원은 외상센터를 반납할 생각은 없고, 외상의사를 다른 수술과 진료로 활용하는 수익성에만 골몰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원광대병원 측은 퇴사한 의사들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권역외상센터 문성근 센터장(신경외과 교수)은 "외상의사들 개개인의 사직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병원 생활에서 의사 사직은 통상적인 일"이라면서 "병원장에 대한 평가는 각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문성근 센터장은 "현재 외상센터 외상의사 채용 등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외과계 전문의 지원체계로 외상센터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원광대병원 사태에서 짚어볼 또 다른 문제는 복지부의 관리 감독이다.

복지부는 원광대병원을 비롯한 전국 17개 권역외상센터 외상전담전문의들의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인건비는 외상전담전문의 1명 당 연간 1억 4400만원으로 17개 외상센터 235명을 합쳐 총 33억 768만원을 배정했다.

외상센터별 제출한 외상전담전문의 인원수에 맞춰 정산과 결산 방식으로 서류심사를 거쳐 지급하는 방식이다.

■복지부 서류심사 허점 “원광대병원 등 외상센터 재점검 시급”

복지부 '2021년도 외상센터 예산안'에 따르면, 원광대병원은 2019년 말 기준 15명, 2020년 6월 기준 14명의 외상전담전문의 재직 현황을 제출했다.

원광대병원 전 외상의사는 "지난해 6월 외상센터에 14명의 전담전문의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면서 "외과계 전문의 명단을 외상 전담전문의라고 제출해도 서류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원광대병원은 외상센터 정상화에 주력하고 있으나 전북 지역 외상체계 공백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전국 17개 외상센터 지정 현황.
전담의사의 외상 외 다른 분야 수술과 진료 참여 역시 서류심사로 찾기 힘들다.

B 외상센터 교수는 "외상의사들의 타 진료 수술과 진료 참여가 단순히 원광대병원만의 문제인지 외상센터 전반의 재점검이 필요하다"면서 "복지부가 외상센터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원광대병원 외상체계 공백으로 인근 외상센터로 외상환자가 몰리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원광대병원 상황을 주시하며 외상센터 지침 위반여부 등을 들여다본다는 입장이다.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외상센터 의료진 사직과 채용은 내부 문제이나 외상 외 수술과 진료 투입은 심각한 지침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현재 외상센터 진료실적을 점검 중이다. 원광대병원 제출 자료를 면밀히 점검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적극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3월 현재 원광대병원 외상센터는 외상전담의사 4~5명이 배치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광대병원은 복지부에 제출한 ‘2021년도 외상센터 운영계획’에서 전담전문의 20명 운영에 따른 인건비 지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