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의사로 병원실습을 돌던 중 교수님께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교수님의 회진시간을 기다리던 환자분은 메모장과 펜을 든 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앞으로 어떤 걸 해야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교수님께서는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3개월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멀쩡해보이는 환자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며, 왜 교수님께서는 저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실 수 밖에 없는것일까?
교수님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냉정하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무거웠고 눈에는 미안함, 안타까움이 뒤섞인 눈물이 밖으로 나오지못한 채 고여있는듯 했다. 희망을 주는 것과 남은 생을 자유로이 살 시간을 주는 것, 그 사이에서 의사들은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하고 산다는 것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도 기적이라는 건 있지 않냐"고. "기적적으로 암이 완치되는 사람들을 TV에서 봤다"고. 맞다. 틀린말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희망만 줄 수는 없다.
안타까움와 아쉬움은 그 한번 뿐이 아니었다. 한번은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을 돌 때 치매와 우울증을 앓고있던 환자가 면담 중 과자를 나눠먹자고 가져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받지 못했던 것도 아쉬운 일 중 하나다. 또 안타까운 일로 치자면 한창 꿈을 펼칠 나이에 갑작스럽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젊은 환자를 본 일도 있다. 이처럼 병원에는 참 내 마음같지 않은 일들이 많다.
그럼 정말로 더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긍정적으로 지내며 병을 극복한 분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환자들에게 이를 권해 줄 수 있다. 또한 정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도 있고,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주변에 알리는 플랫폼을 통해 응급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살아갈 의지와 치유에 대한 희망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환자를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
필자는 병원 실습을 돌며 환자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지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고자 '우리'들의 따뜻한 손길이 의료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메디컬 매버릭스의 공익캠페인플랫폼팀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의료봉사를 기획해보고자 한다. 다음 칼럼을 쓸 때 쯤에는 따뜻한 손길을 받으신 분이 한분이라도 나오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