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편의 발달은 병원에겐 골치다. 환자들의 수도권 의료기관 집중 현상을 가속화시켰기 때문. 지역 거점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환까지 서울행을 고집하는 건 낭비다. 시간, 재정뿐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까지 영향을 미친다.
종합병원급도 환자 이탈 현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반면 해운대백병원 소화기내과만큼은 이 고민을 일정 부분 털어냈다.
지역내 염증성 장질환(IBD) 환자들은 기차 티켓 구매 대신 해운대백병원행을 고집한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네이버 밴드를 활용, 환자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깊은 신뢰감을 형성한 게 주효했다.
모바일 시대, 그리고 하루 안에 전국 출퇴근이 가능한 일일생활권 시대에 종합병원의 생존 전략은 어떻게 될까. 염증성 장질환 명의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김태오 해운대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를 만나 IBD 질환 현황 및 환자 대응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IBD의 특징 및 현황은?
임상 현장에서 IBD 환자를 만나고 치료하는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비단 부산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진단 방법이 개선, 발전하면서 숨어있던 IBD 환자가 추가 확진돼 늘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0년 전에 비해 소화기내과에는 IBD 환자의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주일 중 하루를 아예 IBD 환자만 모아서 따로 진료를 보고 있다.
보통 젊은 층에서 IBD 환자가 많은데 최근에는 노령층 환자의 비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서구화된 식습관 및 유전적 요인, 면역적인 부분 등이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인이 복잡하기 때문에 예방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대응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상이 발생하면 이에 적절한 치료 및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IBD의 표준 치료는?
젊은 사람들은 생물학적 제제 등을 활용해 적극 치료할 수 있는데 고령층은 감염 위험이 있어서 이와같은 치료가 어렵다.
베돌리주맙, 스텔라라와 같은 비교적 안전한 약들이 최근 나와서 적극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과거엔 성인 크로병에 사용하는 레미케이드, 휴미라와 같은 치료 옵션이 전부였다.
이같은 면역억제제는 기전상 체내 면역 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을 높인다. 노인에게 쓰기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지금은 싸울 무기가 많아졌다.
IBD는 완치보다는 평생 관리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젊은 환자들은 상태가 악화되면 서울행을 선택한다.
하지만 IBD는 의사가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고 이에 알맞은 처방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굳이 수도권에 가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
아무리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고 해도 결국 수도권 병원에 가서 하는 일이라곤 진단 후 약제를 처방받아 오는 게 전부다. 환자들 입장에서도 시간과 재정, 체력까지 낭비하는 셈이다.
▲해운대백병원도 환자 이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소화기내과, 특히 IBD 영역만 놓고 보면 해운대병원은 환자의 응집력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의료진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준다. 의사-환자간 깊은 신뢰감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다.
먼저 본인의 경우 네이버 밴드를 활용해 환자 커뮤니티를 직접 관리한다. 지금은 다양한 병원들이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본인이 시작했을 때는 전국 최초였다.
게다가 지금도 커뮤니티를 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전담 직원이 있거나 질문이 올라오면 기존에 있던 응대 매뉴얼대로 복사, 붙여넣기 하는 수준이지만 이렇게 해선 환자를 감동시킬 수 없다.
보통 질문이 올라오면 3분 이내 답변을 원칙으로 한다. 회식을 하다가도 질문이 올라오면 답변을 다는 것이 최우선 순위다.
수년간 '3분 답변'을 이어가다 보니 갑자기 밴드 가입자들이 급증했다. 지금은 1600명이 넘는다. IBD 환자들은 갑작스런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을 경험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때가 많다. 정말 고민 끝에 질문을 할텐데 답변이 2~3일 후, 증상이 해결된 이후 올라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환자들이 늦은 답변에 느끼는 허탈감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컨텐츠만으로는 안 된다. 애정이 있어야 한다.
▲직접 커뮤니티를 관리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고충은?
알람을 듣기 위해 스마트워치도 착용하고 있다. 새벽에도 질문 때문에 종종 잠에서 깬다.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SNS의 시대다. 모바일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당시엔 환자 신문도 만들고 직통 명함을 나눠주고 급할 때 연락하라고도 했었는데 이젠 밴드 하나로 다 되니까 오히려 더 편해진 감이 있다.
IBD 한가지 주제 말고 코로나19 백신 이야기도 올리고, 급여 출시된 새로운 약 이야기도 올리는 식으로 '소통' 측면을 강화하고 있다.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환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주제나 소식들을 전달하고 이에 따른 질문도 받는다. 새로운 약에 대해 소개해 환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변하고 있다. 물론 선택권을 환자들에게 주긴 하지만 의사들의 의견을 곁들인다.
주치의로서 소통도 중요하지만, IBD 질환을 연구하는 학자의 측면에서 밴드 커뮤니티가 연구의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코호트 연구를 보면 알겠지만 단일 질환에 1600명 정도의 환자군을 확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연구 결과는 다시 환자들의 효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는 환자-의사 모두 윈윈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산·경남 지역의 크론병 현황에 대한 연구 논문도 게재했는데 추후 연구 계획은?
계속 신약이 나오면서 경구제, 주사제 및 각각의 특성에 따른 치료 옵션이 다양해지고 있다. 약제의 편의성에 대한 환자 설문조사를 기획하고 있다.
약이 많아졌고, 제형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어떤 약을 먼저 쓸지가 이슈다. 크론병이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하고 증상도 정형화돼 있지 않아 대응법에도 정답이 없다. 오히려 약제 효과는 비슷한데 안전성에서 차이가 있고 편의성이 더 강조되는 상황이다.
약제 춘추전국시대에 환자들이 느끼는 약제 편의성 및 이에 따른 선호도는 어떻게 변해왔는지 조사하는 게 핵심 목표다.
과거엔 주사제인 레미케이드가 선호됐는데, 지금 조사해보면 다른 결과 나올 수도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고령층에선 여전히 병원에서 투약하는 주사제에 대한 선호도가 앞설 수 있지만 젊은 층은 경구제나 자가 주사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한다. 이같은 환자 선호도는 의사들의 대응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한편 IBD와 관련해 부울경 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기존에 있던 연구회에서 분과 개념으로 가이드라인 연구회가 생겼다. 개원의들이 IBD를 잘 진단, 치료하기 위한 지침서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공개하려 한다. 가이드라인 제정은 올해 4월부터 시작했다.
미국소화기학회(AGA)가 만든 IBD 1차 약제 권고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환자가 주사를 원한다고 하면 휴미라를, 경구형을 원한다고 하면 젤잔즈를 줄 수도 있다.
이같은 변수들을 다 포함해 여러 치료옵션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그런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