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산업협회 주도 아이큐비아 등 모델 마련 검토중 국내 및 해외 데이터 전무 상황 "선진화 없이 K-헬스 없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가장 큰 한계로 여겨지고 있는 시장 데이터 구축에 기반이 마련되고 있어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중소, 영세기업들이 80%에 달하고 유통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 정부조차 산업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의약품의 '아이큐비아'와 같은 모델을 마련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의료기기 시장 데이터…문제 부각
23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을 기점으로 국내 제조사와 수입사들이 힘을 합쳐 시장 데이터 구축 등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약품 등과 달리 유통 채널이 제각각인데다 납품 경로도 다양해 실제 국내에서 얼마만큼의 의료기기가 제조되고 판매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산업군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는 의료기기 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돼 왔다.
의약품의 경우 어느 제약사의 어떤 품목이 1년에 얼마나 처방되거나 판매됐는지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물론 비교, 분석까지 가능한 것과 달리 의료기기의 경우 정부조차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심지어 의료기기를 제조, 수입하는 기업들조차 해당 품목은 물론 전체 산업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특정 계열 약물의 처방 규모는 물론 경쟁 제품과의 비교 분석까지 가능한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 산업은 품목에 대한 전체 데이터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심지어 특정 품목을 제조, 수입하는 기업들조차 대략적인 감으로 이를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는 현재 국내 의료기기 산업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서 발생한다. 제조, 수입 단계부터 의료기관에 납품되기까지 지나치게 유통 구조가 복잡해 추적 관리 자체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
또한 가납 형태의 납품 방식으로 인해 실제 사용, 판매 물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창고형 납품 형태가 많다는 점에서 재고 파악도 쉽지 않은 이유다.
가령 A사가 만드는 1회용 주사기라고 하면 공장 출하 물량은 집계가 되지만 이 물품들이 지점과 대리점, 의료기관, 간납사, 약국, 혹은 의료기기 판매점, 창고형 유통업체 등으로 나눠져 유통되면서 이 모든 유통 과정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특히 의료기관에 직접 납품했다 하더라고 가납, 즉 일단 물건을 납품하고 수개월 단위로 사용량을 직접 점검해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인해 즉각적인 재고 파악도 불가능하다.
1000개의 주사기가 출하됐다 해도 과연 이 물품이 대리점 창고에 있는지, 의료기관에 가납 형태로 들어가 있는지, 이미 사용이 됐지만 계산서가 끊어지지 않은 것인지 알수가 없는 셈이다.
시장 데이터가 전무할 수 없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이렇게 한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에 전체 산업의 시장 데이터를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이유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주도 데이터 축적 시동…"제도적 지원 필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유관 기관을 중심으로 의료기기 산업계도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머리를 맞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상당수 제조사와 수입사들이 의료기기산업협회의 회원사로 등록돼 있는 만큼 적어도 이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 데이터라도 구축해보자는 취지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의료기기 산업에 창업 등 신규 기업들의 진출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시장 데이터가 전무하다는 것"이라며 "결국 제조업을 시작한다 해도 완전히 감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고집었다.
이어 그는 "세상의 어느 비지니스도 아무런 시장 정보 없이 뛰어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않느냐"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원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데이터 취합을 위한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협회는 일단 국내 의료기기 산업 시장과 동향 분석에 나선 상태다. 산업연구부를 중심으로 최소한 연감을 마련해 기초 데이터를 확보해보자는 취지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의료기기 품목과 수출, 수입 현황은 물론 국내 의료기기 산업 시장의 개략적인 데이터라도 정리해 최소한의 경영 전략 수립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는 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협회가 구성돼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모든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현재 의료기기산업협회에는 제조사 403개사를 비롯 수입사 527개사와 수리업체 177개사, 판매업체 373개사 등이 회원으로 들어와있다.
하지만 통계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의 수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이미 4000여개에 달한다. 결국 협회 또한 국내에 있는 의료기기 기업 중 3분의 1 정도만이 가입돼 있다는 의미다.
카테고리가 지나치게 넓은 것도 한계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 수입, 유통되는 치료재료 등 의료기기는 8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체외진단키트 등 새로운 의료기기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가정용 의료기기 등은 아예 유통 채널 등도 다르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유통구조 단일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일단 제조, 수입, 출하량은 최소한 추적이 가능한 만큼 이 물건이 실제 의료기관에 납품되는 유통구조가 단일화, 일원화된다면 충분히 시장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의약품과 같이 '지오영' 등의 대형 유통기업을 협회 주도로 만들고 이를 통해 협회에 위원회를 구성해 '아이큐비아'나 '유비스트'와 같은 역할까지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를 이미 정부도 인식하고 UDI(의료기기 고유 식별코드), 소분 판매 금지법, 공급내역보고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이러한 방식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일단 정부에서 진행하는 실적보고와 생산, 수입실적 집계를 협회가 맡고 있는 만큼 대형 전문 유통업체까지만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시장 데이터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모든 과정들은 단숨에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적,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선진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고 있으며 오는 11월 경 최종 완성해 정부에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시장 데이터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의 발전은 물론 수출과 산업 활성화 등에도 필수적인 자료인 만큼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