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모든 기업, 품목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법안 시행 부작용 책임 등 제도적 장치 필요성 강조…"논쟁 여지 다분"
의료기기 제조 및 수입 기업에 대해 부작용 배상을 위한 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서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부작용의 원인과 결과가 너무나 다양한데다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산업의 특성상 소모적 논쟁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법안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보다 섬세한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일 의료기기 부작용 발생에 대한 환자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의료기기 제조 및 수입기업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료기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공포했다.
현재 의료기기의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해도 폐업이나 배상능력 미흡 등의 사유로 손해를 배상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보험을 의무화해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기업들은 법안의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보험을 의무화한다는 의도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환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험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보험 의무화가 취지에 맞게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근본적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보상 범위와 방법, 비용에 대한 문제들이다.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맞게 설계된 보험이 있어야 하는데 법안부터 시행이 되면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
지금 상황에서 가입한다면 생산/제조물배상책임보험 등에 가입해야 하는데 의료기기 기업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아 모호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의료기기 제조기업인 A사 임원은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기만 했지 의무 항목이나 가입 한도, 조건 등에 대한 부분은 제대로 명시된 부분이 없다"며 "의료기기에 대한 보험 상품 또한 마땅히 없는 상황에 최소 금액으로 책임보험만 들면 되는 것인지도 모호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만약 생산/제조물배상책임보험을 든다면 생산하는 품목별로 하나씩 보험을 들어야 할텐데 이 또한 현재 의료기기 산업 구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만약 50개의 주사기를 생산하면 50개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다국적 기업 같은 경우 취급하는 품목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복잡한 유통 구조와 의료기기의 특성상 공급자와 유통자, 사용자간에 책임 소재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제약사가 약을 만들고 의사가 처방하거나 약사가 판매하면 소비자가 직접 이를 복용하는 의약품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이 나타나는데 의료기기는 더욱 문제가 복잡하다는 지적.
가령 온도나 충격 등에 민감한 의료기기의 경우 부작용 발생시 제조 과정의 문제인지, 유통 과정에서 충격이 있었는지 실제 사용하는 단계, 즉 의료행위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의료기기 수입사인 B사 임원은 "소송의 나라 미국만 예를 들어봐도 의료기기 부작용 배상 소송은 10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중대한 설계상 하자가 있지 않은 다음에는 의사와 제조사, 수입사, 유통사, 환자, 보험사까지 다 얽혀서 갈등이 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결국 이러한 분쟁을 전문성 있게 조정하고 과실을 정확하게 잡아줄 수 있는 기구나 제도가 없이는 법안의 취지 자체가 무색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특히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의료기기 기업에 과도한 배상 압박 등이 있을 경우 보험사 자체에서 가입을 거부하거나 상품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