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신장학회가 '적절한 혈액투석 치료 근거기반 진료지침'을 발간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지침 작성에 착수한지 1년만에 빛을 본 것.
매년 다양한 학회들이 진료지침 가이드라인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발간 사업은 '일상다반사'지만 신장학회에겐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지침이기 때문. 40년의 학회 연혁에 빗대보면 학회명이 붙은 지침서로는 다소 늦은 편이다.
작년 학회가 표준진료지침위원회를 신설하고 최우선 사업 목표로 '근거기반 진료지침' 작성을 목표로 내건 것도 학회 명성에 걸맞는 공익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최신 표준 진료 지침과 최신 의학적 근거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서 더 나아가 과학적인 지침 작성 방법론을 적용,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표준을 삼겠다는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는 평.
오국환 신장학회 진료지침위원장(서울의대)을 만나 공식 지침서 마련 경위 및 발간까지의 과정,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발간한 진료지침 내용은?
간단히 말해 한국형 혈액투석 치료 지침이다. 작년 5월 진료지침위원회를 신설하고 1년간의 준비 끝에 발간하게 됐다. 13명의 위원들이 함께 했다.
혈액투석 시 치료에 대한 핵심 질문 14개를 선별하고 각각의 질문에 대해 국제적인 최신 표준 진료 지침과 최신 의학적 근거들을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정리했다.
수 백 편에 달하는 논문을 리뷰하고 그중 질적 수준이 높은 연구를 추리는 과정, 그리고 주요 근거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총 18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학회 연혁에 비춰보면 공식 지침 발간이 다소 늦었다.
복막염 투석, 만성신장병 골대사에 대한 진료 지침 등 그간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관련 대가들이 책임지고 집필했고 공신력을 갖춰 공식 지침 필요성에 대해 다소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다.
비공식 지침이 전문가 의견들의 종합판인 것은 맞지만 학술적 지식이 대량화, 다변화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반영할 틀이 필요했다. 과학적인 방법론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근거들을 축적하는 과정, 이에 대한 필요성이 공식 지침서 발간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번 지침은 향후 다양하게 작성될 다른 지침들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에 지침 작성의 엄정한 과학적 방법론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고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의 혈액투석 전문가들과 개발 방법론 전문가, 통계 전문가까지 모시고 워킹 그룹을 결성했다.
지침위원회라고 해도 특별하진 않다. 임상의로서 스페셜리스트라고 해서 지침 작성에도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이에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최미영 박사를 모시고 과학적 지침 개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 및 도움을 얻었다.
처음 해보는 분야이기 때문에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노하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임상 연구 논문을 쓰는 것보다 더 힘든 과정이라 느꼈다. 양철우 이사장을 비롯한 다양한 임원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지침서 발간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한국형 지침이라면, 해외의 가이드라인과 다른 부분은?
보통 진료 지침은 근거 등급과 권고 등급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근거가 확실하면 학회의 진료 권고 등급도 같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엄밀히 두 분야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한 근거가 있어도 각 나라 보험 체계에 맞춰 다른 권고가 나올 수 있다. 지침을 만드는 것이 곧 다양한 근거들을 자국의 보험, 문화 상황에 맞게 현지화하는 작업이다. 쉽게 말해 근거가 있고 확실해도 한국에서 보험 적용이 안된다면 강하게 권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지침엔 NKF-KDOQI, EBPG, KHA-CARI, NICE 등 국제적인 최신 표준진료지침을 수용개작하고, 2019년 이후 나온 새로운 연구들을 체계적 문헌연구를 통해 추가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환경에 맞도록 사회, 문화, 보험 환경을 반영하는 작업을 거쳤다. 예를 들면 고유량 혈액 투석 방식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90% 보험이 인정되기 때문에 권고 수준이 높아진다.
실제로 저유량 투석에 비해 생존률이 좋다는 연구들이 있는데 반면 외국에선 고유량 투석 방식에 보험이 적용이 안 돼 권고 수준이 낮은 편이다.
▲표준진료 지침 발간으로 기대되는 치료 변화 양상은?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외국 지침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정, 안내하는 정보적 측면의 의미가 있고, 임상 현장에서 정작 필요한데 보험 적용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 근거를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학회가 어떤 치료를 권고하고 있고,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면 향후 정책 입안자와 보험 적용 여부에 대해 만나서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양한 학회들이 이런 근거 마련 작업을 위해 지침서 발간으로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신장학회의 경우 현 보험 시스템의 인정 영역을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첫 가이드라인 작성이라는 점을 감안해 최대한 보험 적용 범위 내에서 지침을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보험이 안 되는 부분을 권고하면 임상의들은 난감해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보험의 테두리를 인식하며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침서 발간으로 그간의 치료 경향이 확 바뀌거나 하는 급진적 변화를 예상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신 연구를 반영하고 근거들을 제시했기 때문에 임상의들이 적정 치료 방법을 선택하거나, 적정 치료를 하는지 판단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혈액 투석 분야로 첫발을 뗐다. 향후 계획은?
처음부터 신장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진료지침을 다 만들 수 없다. 혈액투석으로 시작한 것은 연간 환자 10만명에 건보재정이 2조 5천억원이 들어가는 가장 시급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신장학회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고 학회 내 연구회도 있다. 각자의 스페셜 진료 파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분과처럼 연구회를 만들었다.
각 10개의 세부 연구 분야가 있는데 벌써 전해질-고혈압 연구회에서 저나트륨혈증 치료 가이드라인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해서 해당 연구회 전문가들과 진료지침위원회가 새 워킹 그룹을 만들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연구회 분들이 가지고 있지만 지침 개발 노하우는 진료지침위원회가 갖고 있다.
지침 개발 방법론은 최미영 박사가 함께한다. 서로 모이면 굉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아마 저나트륨혈증에 대한 치료 가이드라인이 두 번째 공식 지침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외에도 파브리병 연구회에서 유전질환인 파브리병에 대한 지침서 개발에 착수했다. 진단이 쉽지 않고 다양한 장기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신장 전문의부터 다학제적인 워킹 그룹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향후 다양한 진료 지침이 학회의 추인을 얻어 공식 발간될 예정이다. 앞서 과학적 기틀이 마련된 만큼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판단한다. 다양한 학회의 공식 지침서 발간을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