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예방접종이 없던 2020년 10월에는 독감접종이라도 하려는 인파로 병원들마다 북적이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독감접종 수요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백신을 구할 수가 없어서 많은 애로점이 있었다. 하지만, 2021년 10월은 남아도는 독감백신 재고에 시름이 깊어 가는 모습이다.
작년에 비해서 올해 독감접종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접종시기와 겹치다 보니 접종에 대한 피로감 내지 접종을 꺼리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21년 10월말 18세 이상 성인 3명 중 2명이 코로나19 접종을 마쳤을 만큼 접종량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동안 접종의료기관을 방문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만큼 독감접종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도 저하와 접종기관의 피로감도 존재했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접종을 마쳤다는 사실에서 국민들의 참여 의지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많은 접종을 훌륭히 이루어 낸 의료진들의 노고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만큼 대견하다.
처음 일선 일차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백신이 이루어질 때만해도 백신에 대한 전국민의 우려와 더불어 부족한 백신 공급에 따른 문제 그리고 복잡한 행정절차 등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접종 행위는 기본이고 철저하게 온도를 유지하면서 백신을 보관해야 하는 일, 수 많은 서류작업을 포함한 행정업무, 백신갯수 뿐만이 아니라 주사기 갯수까지 매일 카운트하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더불어 부작용 발생시 대처하는 임무와 온갖 접종자 관리 그리고 민원업무도 해야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긴급이라는 앞글자가 붙은 공문을 포함한 문서들이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오는 바람에 가뜩이나 접종으로 정신이 없는 의료진들은 숨을 쉴 기회조차 어려웠다. 10월이 되어서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화이자, 모더나의 서로 다른 코로나19 접종이 엉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대규모의 독감접종까지 덧붙여져서 현장에서는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동안 수많은 영유아 예방접종을 비롯해 청소년과 성인 백신을 문제없이 수행해 낸 경험 많고 훌륭한 의료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금번처럼 조금의 오차 허용도 없이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매일같이 많이 접종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들지 않았나 싶다.
과거 신종플루 백신 접종 때는 단일 백신을 놓는 작업이어서 복잡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부작용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접종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많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에는 전산업무와 행정업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량도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겪는 백신접종은 극한업무의 연속으로 접종 의료인력의 체력과 정신력은 이제 임계점에 도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백신 접종을 하는 위탁 의료기관의 하루는?
실제 접종기관에서의 백신 업무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맨 처음 당일 예약자를 시간별로 확인한다. 접종자가 시간에 맞추어서 오지 않거나 방문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문자와 전화로 연락을 취하고 사유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접종일 변경 등에 대한 행정적인 도움을 주는 업무도 동반한다. 접종자의 인적사항을 신분증 등을 통해서 일일히 확인하고 접종에 대한 전반적인 상항을 파악한 후 이를 개별적으로 전산확인을 한다. 접종별로 백신을 준비하고 주의사항을 비롯한 설명을 마치고 나면 접종 준비가 끝이 난다. 그리고나서야 접종이 이루어진다.
접종을 마쳤다고 모든 일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접종이 끝나고 나서도 접종 후 이상반응 등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문제없음이 확인이 되면 그 때서야 접종자는 귀가하게 된다. 귀가 이후에도 이상증상이나 반응 등이 발생할 경우 전화 등 온라인 상담과 직접 내원시 적절한 조치를 하고 필요시 부작용 신고까지 해야 하는 등 많은 일을 연속해서 해야 한다.
또한 접종 예약변경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행정업무와 잔여백신 문제해결 그리고 접종 전 사전문의 상담 등 하루에도 많게는 수백통의 전화를 응대하고 접종자의 전산입력을 마쳐야 하는 고단한 일들도 병행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피접종자 입장에서는 빨리 접종만 마치고 병원을 나서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접종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못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간혹 큰소리까지 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말 못하는 의료진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고, 소위 이야기하는 감정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에는 각기 다른 접종이 네 종류가 되는 데다가 분주 백신이고 효능과 부작용도 제각각이면서 대부분 교차접종이 안 되는 이유로 혹시나 있을 혼선에 대비해서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백신 이름이 새겨진 서로 다른 색깔의 스티커를 접종자의 몸에 붙여서 구분 짓거나 이와 유사한 메달을 이용하기도 하고 공간을 분리 시키는 등이 그것이다. 이것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서 접종할 때마다 성함을 직접 부르면서 '무슨 접종 몇차 맞지요'하고 다시 확인한 이후에 접종을 하였다. 그럼에도 방송에 오접종 사례가 나온 뒤에 일부 피접종자는 본인 접종에 대한 확인질의를 50번에서 100번 이상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유효기간 초과 백신에 대한 뉴스가 나온 뒤부터는 직접 백신 유효기간을 확인해야겠다는 분들도 있어서 매일 원내 게시판을 이용하여 금일 접종 유효기간을 게시하고 매번 설명을 해야 했다. 그 외에도 방송이나 여러 매체에서 인과성이 불분명한 사건 사고들에 대한 소개가 많이 나오면서 불안한 피접종자들 중에서는 과도한 긴장감에서 오는 미주신경성 쇼크 내지는 심장의 빈맥 등으로 현장에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 때마다 응급으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매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자칫 생명이 위급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환자를 살려야 하는 중차대한 일도 완벽하게 수행해 내야 했다. 즉 접종을 하면서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전쟁터라고 해도 무방했다.
접종으로 지역사회에서 일차의료기관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정리하다 보니 참으로 많은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동안 국민건강의 최일선에는 지역주민의 건강한 삶을 위해 누구보다도 중요한 일을 일차의료기관들이 해왔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일차의료기관들이 전 세계적인 재난 앞에서 전국민 접종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하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건강이 심각하게 위협 받는 상황 속에서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동안 일차의료기관은 만성질환관리와 경증질환에 대한 지역 주치의 형태로 제한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본 바가 있다. 물론 이런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금번과 같은 급성호흡기 감염병을 비롯한 국가적인 재난 앞에서 이런 생각만이 올바른 방법일지 생각해본다면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보다 나은 국민건강을 위해서 무엇이 더 유리한 방향일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급성호흡기질환을 잘 볼 수 있는 숙련된 일차의료기관들이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후퇴시키려 하지 말고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는 것이 선진 대한민국 의료를 만들어나가는데 초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백신접종을 하고 있는 11월이 시작되는 지금 시점에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