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는 유통 구조 개편을 위해 치료재료 관리료 신설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주목된다.
의약품의 유통, 관리를 위해 의약품 관리료가 지급되듯 급여 품목인 치료재료 또한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 하지만 이에 필요한 예산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현실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산업계가 의료기기 유통 구조 선진화를 위한 방안으로 치료재료 관리료 신설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기산업협회 유철욱 회장은 "현재 의약품은 구매와 관리, 보관 등에 필요한 금액을 관리료로 보전해주고 있지만 치료재료는 동일한 급여 품목인데도 이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산업계에서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고 정부도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의약품은 보관과 유통 등에 필요한 실비의 개념으로 의료기관과 약국에 의약품 관리료를 지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의약품을 안전하게 보관하라는 취지에서 그 비용을 일정 부분 보전해주고 있는 것.
이러한 의약품 관리료는 의료기관에 2%, 약국에 2%로 책정돼 있는 상황. 1억원어치 약을 구매한다 하면 200만원 정도의 의약품 관리료가 나오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의료기기 기업들은 같은 급여 품목으로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유사한 경로로 유통, 관리, 보관해야 하는 치료재료와의 형평성을 지적하고 있다.
의약품 관리를 위해서는 관리료를 보전하면서 마찬가지로 급여에 묶여 가격이 일괄 지정된 치료재료는 전혀 이같은 지원이 없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의견이다.
의료기기산업협회 나흥복 전무는 "의료기기 유통 구조가 계속해서 꼬여가는 것은 결국 누군가가 치료재료의 유통과 보관,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을 위해 정부에 치료재료 관리료 신설 방안을 건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의료기기 기업들은 유통 구조에서 나타나는 상당수 문제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파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치료재료를 대량 구매해 보관해야할 경우 공간과 인력 등이 필요하지만 이를 보전받을 길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간납사라는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를 통하게 된다는 것.
그러다보니 간납사 또한 여러 의료기관에 납품해야 할 치료재료를 관리할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료기관과의 특수 관계를 이용해 공급자인 의료기기 기업에 이를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치료재료에 대한 관리 비용을 정당하게 보전해준다면 이러한 복잡한 유통 구조의 문제들을 충분히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의료기기 기업들의 주장인 셈이다.
유철욱 회장은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어짜피 같은 급여 품목인데 의약품은 관리료가 나오고 치료재료는 나오지 않으니 직접 관리를 할 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간납사 등이 탄생하게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정부와 뜻을 같이 하더라도 걸림돌은 산적하다. 일단 이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관련 규정이 마련돼야 예산 집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의료기기산업협회 등은 일단 의료기기법 개정안에 총력전을 쏟는다는 계획이다. 비효율적인 유통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결국 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예산이다. 결국 재정은 건강보험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우선 순위 등을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부담이 남아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치료재료 관리료에 투입되는 비용이 2천억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의약품이 총 4%의 관리료가 나온다는 점에서 크기와 부피, 무게 등을 감안하면 치료재료의 경우 5%선이 타당하다는 의견.
현재 전체 의료기기 시장에서 급여 품목 치료재료 부분이 4조원 규모라는 점에서 5%라면 2천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철욱 회장은 "이는 산업계에서 추산한 규모일 뿐 결국 정부로서도 연구 용역 사업 등을 통해 적정성과 소요 예산을 추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며 "사실 20년전 의약분업때 의약품과 함께 적용됐어야 하는 부분인데 당시에 워낙 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다보니 치료재료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산업계가 원하는 것은 무언가 더 많은 것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며 "적어도 의약품 정도 만이라도 효율적으로 치료재료가 유통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