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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비대면 플랫폼…의사들 "의료법 위반 소지 있다"

발행날짜: 2022-05-19 05:30:00

의료계, 의료 쇼핑·오남용 위험 지적…"탈모·다이어트약 부작용 우려"
참여 의사들 서비스 관련 공지 못 받아…"제휴 병·의원 있을 것"

비대면진료 플랫폼에서 환자가 원하는 의약품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의료계가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더욱이 해당 서비스가 특정 병·의원과의 제휴를 통해 제공된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A사가 운영하는 비대면진료 플랫폼에 '원하는 약 처방받기'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해당 서비스는 특정 질환에 대한 복수의 의약품을 제시하고 환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 식이다. 처방 질환은 탈모·다이어트·인공눈물·소염진통제 등이다.

A사가 최근 시작한 '원하는 약 처방받기 서비스' 화면 캡쳐

약을 구매하기 전 진료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에 대한 선택권이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서비스가 특정 병·의원 및 약국과 제휴를 맺고 모든 진료·처방 건을 몰아주는 방식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해당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진료를 진행 중인 한 개원의는 이 같은 서비스에 대한 공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공급자인 의사에게 참여 의사를 묻거나 이를 통한 진료 건이 배정될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해야 하지만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의사가 처방하고 있을까. 해당 개원의는 '원하는 약 처받받기 서비스'에 대한 진료 및 처방 건을 담당하는 별도 의료기관이 존재할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처방된 의약품을 배송하는 약국이 따로 정해져 있고, 진료 의사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이 부분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면 의사가 약국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약국이 먼저 지정되고 병원이 지정되는 형태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방식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하는 약 처방받기 서비스 화면

이 같은 행태는 약사법 제24조에 명시된 유사담합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해당 법령이 명시한 유사담합행위는 ▲약국개설자와 의료기관 개설자 사이의 사전 약속에 따라 처방전에 의약품의 명칭 등을 기호나 암호로 적어 특정 약국에서만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 ▲의료기관 개설자가 법 제25조에 따른 처방의약품 목록 외의 의약품을 처방하여 특정 약국에서만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 등이다.

이와 관련 업체 측은 해당 서비스가 병·의원과 제휴를 맺고 제공되는 것은 맞지만,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라고 밝혔다.

업체 측 관계자는 "여러 병·의원에 연락해 해당 서비스에 참여 의사를 밝힌 곳과 제휴를 맺은 것"이라며 "아직 베타버전이어서 참여율이 낮은 것일 뿐 다른 병·의원의 참여를 배제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같은 방식이 의료법 위배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내용을 확인한 후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같은 의약품을 계속 복용해야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동시에, 의사결정에 있어 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환자가 의약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의료 쇼핑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낭비와 의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19 재난 상황을 이유로 비대면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는데, 관련 산업이 규제 샌드박스로 넘어가면서 업체들이 선을 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한 피부과 개원의는 "탈모약은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식이고 다이어트약은 향정신성의약품이라 처방에 주의가 필요하다"며 "외국에서 거식증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어 다이어트약 처방은 특히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다른 개원의 역시 "매번 같은 의약품을 복용하던 환자도 주기적으로 상태를 파악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적정 용량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며 "비대면진료라고 해도 환자와 통화를 하고 상태나 기저질환, 복용 후 반응을 확인하고 추가 처방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는 비대면진료에 적극적인 개원의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현재 비대면진료를 주축으로 진료 중인 아산케이의원 이의선 원장조차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원장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업체에 대한 규제뿐만 아니라, 의료인에 대한 진입장벽 및 윤리교육도 포함돼야 한다"며 "현재는 비대면진료가 어떻게 잘 정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고, 이 시기를 놓치면 겉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전문의약품을 환자가 고르도록 하는 방식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본회는 코로나19가 격리 환자가 없어진 직후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를 종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비대면진료는 의료계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문제로 신속성과 편리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