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에 감사하지 않는 사회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것과 반대로 우리 사회는 점점 이 기치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동안 사회는 누군가의 헌신 위에서 성장해 왔지만, 오늘날엔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감사한 일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 공정과 상식인가.최근 한 국회의원이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를 두고 한 발언이 그 예다. 군의관 복무 단축 요구는 의사가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취지였다.이후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고, 해당 국회의원은 정제되지 못한 표현이었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현행 복무 기간이 과도한 점은 공감하지만, 관련 사안이 군의관 수급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이렇게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씁쓸함은 남는다.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을 존중하기는커녕, 잠재적인 이기주의자로 매도하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군의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방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의무를 다함에 있어 더 합리적인 선택지를 택하겠다는 것뿐이다.개인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소명의식 부재로 치부하는 잣대는 우리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이처럼 희생을 강요하고 헌신을 당연시하는 현상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개인의 사명감과 헌신에 기대온 필수의료 현장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교권 추락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무너진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소방·경찰 등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요 기반 분야에서도 인력 이탈이 가속하는 실정이다.물론 정부는 국가 주요 기반 시설과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만큼, 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과 정당한 보상이 아닌,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는 지속 불가능하다.이는 사회학에서 경고하는 사회적 자본 붕괴와 닿아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상호 신뢰와 호혜성 같은 사회적 자본이 무너질 때 공동체가 위기를 맞는다고 지적했다. 누군가의 헌신을 존중하기는커녕, 이를 누리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사회에선 어떤 공적 동기도 싹틀 수 없다는 의미다.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말한 조직 내 상호성의 원리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조직에선 결국 기여하는 사람부터 지쳐 떠나고, 공동체 전체의 활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누군가의 헌신은 타인이 함부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이들이 없다면,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 당장 아낀 헌신의 대가는 언젠가 더 큰 파국으로, 이자까지 붙어 돌아올 것이다.공정과 상식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명분이 아니다. 헌신에는 존중을, 책임에는 합당한 보상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공정이고 상식이다.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에 따른 권리 주장에 이기주의라는 낙인을 찍는다면, 과연 누가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겠는가. 누군가의 헌신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사회가 아니라, 헌신이 존중받기에 누구나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